“OO님 맞으신가요?” “대책위에서 나오셨나요?”
13일 오전 10시40분 서울대 관악캠퍼스 행정관 앞. 얼굴을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등으로 가린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서로를 향해 물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암호명처럼 자신을 소개하며 ‘행복’ ‘자판기’라는 단어를 댔다. ‘접선’을 끝낸 여섯명은 행정관 앞 계단 위에 줄지어 섰다. 들린 손팻말엔 ‘본교는 연구실 내 표절문제, 왕따문제 대책 마련해라’ ‘갑질 교수 정직 3개월… 교수 징계제도 개선하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팔만대장경 스캔노예 사건’ ‘교수의 대학원생 논문 표절 사건’ 뒤에서 숨죽여있던 서울대 대학원생들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교수들의 갑(甲)질을 규탄하고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울대에서 학부생이 아닌 대학원생들이 학내에서 교수들의 갑질 문제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들의 부조리와 그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대에서도 만연했다. 그러다 한달 전 ‘연세대 텀블러 사제폭탄 사건’ 이후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들썩였다. 서울대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대학원생 게시판에 각 연구실의 비리 내용이 올라왔고, 익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추진했다. 모바일 메신저의 단체 채팅방이 열리자 20~30명에 달하는 대학원생들이 모였다. 대학원 총학생회, 사회대 모 교수 갑질 사건 대책위원회 등이 준비를 도우며 기자회견의 틀이 갖춰졌다.
대학원 총학생회 측 학생들은 얼굴을 공개했지만, 그 외 학생들은 신원 공개 후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다. 입을 가린 마스크에 막혀 이들의 발언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교수를 상대하며 겪은 고충들은 절절했다. 자신을 ‘자판기’라고 밝힌 대학원 졸업생은 “제 옆 실험실의 한 선배는 어머니가 위독해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교수로부터 ‘이렇게 된거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리고 연구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저도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인권폭력·언어폭력을 당했고, 연구실을 나오겠다고 하자 교수가 ‘너는 9·11 테러 때 쌍둥이빌딩을 공격한 자들 같은 극단주의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사회대 교수 갑질 대책위의 한 학생은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교수의 인격모독 표현 및 비하, 자택관리 등 사적업무 지시, 연구비 회수 전용 등을 ‘인권침해 및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심의했다”며 “그럼에도 교수는 고작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고, 학과 건물이 임시 사무실을 차리며 수업도 3과목 개설하는 등 자신이 건재하고 곧 돌아올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정부와 학교를 향해 요구한 바는 명확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학생의 개인정보가 보호되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노조나 신고 태스크포스(TF) 설립을 법률화하라”고 요구했다. 또 교육부에 “대학별 연구실 평가 수단을 마련하고 자퇴·휴학·중도포기 학생 및 연구실 평가 공개 수단 마련을 의무화하라”고도 했다. 자신을 ‘자판기’라고 밝힌 대학원 졸업생은 “예비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을 선택·지원할 때 누가 얼마나 그만뒀는지, 얼마나 졸업했는지 알지 못한다”며 “중퇴생 비율이 많은 연구실을 학생들이 선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석사·박사 졸업심사기준은 있는데 졸업기준은 명확하지가 않다”며 “언제 (대학원생을) 졸업시켜줄지가 완전히 교수들의 재량이라는 뜻으로, 교수들이 과도한 권한으로 학생들을 옥죄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들은 또 서울대 본부에 “권리장전 및 인권 가이드라인을 외면하지 말고 총학생회와 협의해 실제 시행하라”며 “교수 징계위에 일정비율 학생대표를 참석할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또 “학교와 교육부에서 해결하지 않는 대학원 연구실 내 표절문제·왕따문제 대책을 마련하라”고도 촉구했다. 사회대 모 교수 갑질 사건 대책위에서 온 한 학생은 “교수에 대한 서울대의 징계기준이 미미하다”며 “해임 다음 중징계가 3개월 유기정직인데, 학생들은 무기정학을 하면서 교수들에게는 유기정직은, 지나치게 짧은 기간 동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징계위에 참여하면 교수들이 제식구 감싸기 하거나 징계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도 했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은 “이번 기자회견·시위가 알려져 다른 학교에서도 움직임이 있다면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릴레이식으로 (다른 학교에서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서울대 본부 측에 학생뿐 아니라 교수, 직원 들까지 아우르는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기로 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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