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박찬호와 NC 이원재. 구단 제공

 

한국 국적 남성들이 성년기로 접어들 때쯤 마음 속에 좀처럼 덜 수 없는 짐이 생긴다. ‘병역의 의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몸이 곧 자산’이라는 말이 누구보다도 잘 들어맞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겐 병역 의무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대다수의 남성들과는 달리, 상무·경찰 야구단이 아닌 곳에서 2년 가까이 현역 군 복무를 한다는 건 사실상 ‘경력 단절’이기 때문이다. 사회복무요원처럼 일과 후 몸을 만들 시설을 이용하기도 힘들다.

KIA 내야수 박찬호(24)는 그 어려운 현역 복무 후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지난해 10월 군 전역 후 올 시즌 복귀한 박찬호는 입대 전 통산 타율이 0.169에 그쳤지만 올 시즌 3할 가까운 타율을 치며 KIA 내야진에 빠져선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1월 입대해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 ‘집과 가까운 서울에서 복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에 자원했다. 최근 ‘스포츠경향’과 만난 박찬호는 “자대에 가기 전까지는 청와대 외곽경비가 고된 임무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워낙 중요한 임무를 맡았던 박찬호는 “경계근무를 설 때 야간투시경으로 북한산의 사슴, 멧돼지의 번쩍거리는 눈과 마주치면 조금 무서웠다”며 군 시절을 떠올렸다.

삼성 좌타 외야수 최선호(28)도 꽤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2015년 삼성 정식 선수가 된 최선호는 2017년 2월 입대해 대구 50사단 기동중대에서 복무했다. 최선호는 “훈련이 많은 데다 강도도 높았다. 100㎞ 행군도 했고 해안 경계도 섰다”고 말했다. 큰 키와 마른 몸매 덕에 육군 1군사령부 의장대 출신이라는 이력이 더욱 돋보이는 LG 김용의(34)는 “행사 때 깃발을 드는 기수단이었다. 부대장 이취임식처럼 큰 행사 때는 2~3시간 가만히 서 있는 게 일이었다”며 “나중에는 선 채로 잠이 올 정도로 고됐다. ‘이래서 사람이 움직여야 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사회와 단절되고 야구와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시간들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박찬호는 “사실 입대할 때는 야구에 대한 흥미나 미련이 많이 없었다. 그러나 2017년 KIA의 우승을 군대에서 보고난 뒤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후 야구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됐다. 체력단련실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때로는 연병장을 뛰었다. 야구경기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 겨우 캐치볼과 스윙을 하는 정도였지만 틈날 때마다 몰두했다. 박찬호는 “마른 몸에 근육을 붙여보고자 PX(군 매점)에 있는 냉동식품부터 단백질 보충제까지 닥치는대로 먹었다”며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축구나 풋살 시합 때마다 빠지지 않고 뛰었다. 내가 우리 중대 원톱 스트라이커, 가레스 베일이었다”라고 했다. 최선호는 “프로에서 대수비·대주자로 나서야 할 일이 많은데 군대에서 몸이 느려졌을까봐 걱정됐다”며 “전역할 때쯤 돼서 ‘짬밥’도 조금씩 줄였다”고 말했다.

야구팬인 선·후임과 간부들의 관심과 배려도 이들을 도왔다. 2014년 7월 입대해 수도방위사령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한 NC 이원재(30)는 “삼촌뻘되는 부대 통신반장님이 롯데 열성팬이셨다. 야구 장비를 부대에 들일 수 있도록 상부로부터 허락도 받아주셨고, ‘원재야, 너는 잘 될거다’라며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프로 데뷔 전에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던 키움 허정협(29)도 “혹한기 훈련, 행군 등 여러 훈련에서 빠지지는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선수였는데도 ‘운동선수니까 다치면 안된다’고 많이 배려해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군 복무의 시간은 선수들에게 성장의 시간으로 남았다. 박찬호는 “군대를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전역만 기다리는 삶이 즐겁지는 않다”면서도 “그렇다고 ‘상무·경찰 야구단에 갔으면 내가 더 잘했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군 생활은 내게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최선호도 “다양한 방면의 친구들과 만나며 세상을 좀 더 알게 됐다. 현역 다녀온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