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전문가들이 본 정부의 CVC 설립 정책 부작용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태년 원내대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지난 11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주도 벤처캐피털 CVC 활성화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 CVC, 총수 일가 투자 제약 없인 지배권 승계 악용 우려
금산분리 ‘예외 인정’ 뒤 재계 추가 완화 요구 이어질 가능성
원칙 허문 뒤 규제 어려워…조항 자체가 유명무실화 될 수도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금산분리’ 완화와 ‘대기업 경제력 집중’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정부가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재벌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과’(毒果)를 집어들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코로나19로 우려되는 터라 이 같은 ‘예외 인정’ 요구가 재계에서 잇따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6일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산업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금융회사의 자금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롯데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매각하고, CVC인 롯데액셀러레이터 지분을 롯데호텔에 넘긴 것도 이 같은 법에 따른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이 같은 ‘금산분리’ 중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CVC만 예외적으로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데 대기업 자금을 끌어들여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추겠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총수 일가는 계열 CVC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벤처회사에 대한 계열 CVC의 투자 역시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할 경우 ‘지배권 승계에 악용될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금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도 되느냐다.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물꼬’가 터지면 다른 예외를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높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일반지주회사가 지배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범위를 넓히자는 논리로 악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CVC라는 예외를 두면 자본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금융투자회사들도 풀어달라는 논리를 꺼낼 수 있다. 특히 지배구조 정점에 금융사들이 있는 그룹은 금산분리를 완화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조금씩 예외를 만들면서 조항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며 “과거 재벌들이 규제를 무력화시킬 때 썼던 수법으로 지주회사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벤처지주회사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CVC 도입으로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벤처지주회사 지분 투자 제한을 현행 5%에서 10%까지 올려도 실효를 낼 수 있는데 벤처지주회사 기능과 겹치는 CVC를 굳이 도입할 이유가 없다”면서 “구글·아마존 등 CVC가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는 것과 달리 국내 CVC는 외부자금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도 걱정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지불한 ‘금산분리’ 비용을 그간 비과세특례 등 혜택으로 정부가 돌려줬던 건데, 현재 움직임은 기업이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를 계속 만들어 이 원칙을 무력화시키는 작업이라 본다”고 말했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벤처회사에 대한 계열 CVC의 투자를 금지하는 규제방안 없이 CVC가 도입될 경우 총수 일가의 ‘지배권 승계’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지금도 비상장회사를 통해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토대로 만든 종잣돈으로 경영권 승계를 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CVC라는 다른 ‘통로’까지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에 CVC가 투자한 뒤, 이 벤처기업의 지분가치가 고점일 때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에 있는 기업과 합병을 시키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업계는 말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CVC의 투자를 막겠다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강한 조치로 기업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원칙을 허문 뒤 생기는 문제는 사후적으로 규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규정 등을 통해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부당지원이라면 계열사가 아닌 경우에 거래됐을 ‘정상 가격’이 비교돼야 하는데 CVC 투자에 있어 정상 가격 산정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이 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 귀속되는 이익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도 전적으로 공정위의 몫으로 남아 있는데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산분리를 안 하는 국가도 있다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 일각에서 나오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학계는 말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금산분리 원칙이 없는 국가들은 다른 쪽의 의무를 부과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제조업 등 산업이 금융을 가져봤자 좋을 것이 없도록 제도를 짜서 금산분리 정신은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국내 상황에서) 금산분리 원칙 완화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임아영·윤승민 기자 layknt@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