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회를 놓쳤다. 승부처가 될 수도 있던 5회말 2사 만루. SK 정의윤(32)은 대타로 타석에 섰다. 초구에 방망이는 돌아갔고 공은 외야로 향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환호성은 그러나 곧 멎었다. 정의윤의 타구는 LG 좌익수 이천웅이 앞으로 달려나와 잡아냈고, 베이스를 가득 메운 주자는 모두 잔루가 됐다.
13일 열린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LG-SK전. SK가 3-0 리드를 잡고는 있었지만, 불안한 불펜을 생각하면 승리를 안심할 수는 없었다. 선발 김광현은 5이닝 동안 단 58개의 공으로 무실점하며 잘 던졌다. 하지만 SK는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김광현을 6회에 올리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일까. 선발 출장한 선수도 두 번 맞이하기 힘든 만루가 7회에 다시 정의윤을 찾아왔다. 이번엔 신중했다. 풀카운트가 될 때까지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LG 고우석의 몸쪽 높은 7구째 시속 148㎞ 직구. 타구는 다시 구장 좌측 외야를 향했다. 이번엔 환호성이 그치지 않았다. 타구는 정의윤이 2년하고도 9일 만에 쏘아올린 만루홈런이 됐다.
다소 굳은 표정으로 타구를 응시하던 정의윤은 타구의 종착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1루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홈을 밟은 뒤, 트레이 힐만 감독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힐만 감독이 아픈 듯 바로 정의윤을 손바닥으로 받아쳤지만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올 시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정의윤이 마음고생까지 외야로 날려보냈다는 걸 힐만 감독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SK의 강타선이 빛날수록 정의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짙었다. 이미 두자릿수 홈런을 친 김동엽, 리드오프 노수광, 여기에 정진기와 한동민까지 SK의 외야를 두고 경쟁했다. 한 때 팀의 4번타자였던 정의윤의 자리는 뒤였다. 개막 이후 줄곧 1군 엔트리에 자리했지만 타율은 2할2푼8리에 그쳤다.
반전의 기회는 5월 둘째주에 찾아왔다. 지난 10일 마산 NC전에서 4회초 동점을 만드는 솔로홈런을 쳐 방망이를 달궜고, 사흘 만에 홈런을 추가했다. 그것도 연타석 홈런이었다. 정의윤은 8회말 1사 1·2루에서 세번째 타석에 들어서 LG 여건욱의 몸쪽 138㎞ 직구를 받아쳐 다시 홈런을 쏘아올렸다. 혼자 두 개의 홈런을 쳐 7타점을 올렸다. 정의윤이 한 경기에 7타점을 올린 것은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다. SK는 12일 만에 실전 등판에 나선 앙헬 산체스를 포함해 불펜진이 LG 타선을 경기 끝까지 틀어막아 10-0 대승을 거뒀다. 이날 잠실에서 두산이 넥센에 1-2로 지면서 SK는 15일 만에 두산과 공동 선두가 됐다.
정의윤은 “오랜만에 팀에 도움이 돼서 기뻤다”며 “언제 경기에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꾸준히 연습을 해왔다”고 말했다. 5회말 첫 타석 때는 예상보다 빠른 투입에 당황했지만, 두번째 타석에서는 “노아웃이었기 때문에 뜬공만 날리자고 마음먹었다. 투수가 1-3 카운트부터 몸쪽으로만 공을 던지길래 몸쪽 공을 노렸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정의윤에게 당장 주전 자리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제 나가든지 팀에 도움이 되게끔 노력하겠다”는 정의윤의 말에는 힘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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