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자신의 등번호를 영구결번하는 자리에서 인사말을 남기는 데이비드 오티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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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티스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풍미했던 좌타 거포이면서 보스턴 팬들에게는 특히 각별한 존재다.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팔아넘긴 뒤 보스턴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다는 ‘밤비노의 저주’를 86년만에 깨고 보스턴이 세 차례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데 오티스가 앞장섰다. ‘약물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보스턴에 합류하기 전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오티스도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서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가 됐다.

그런 오티스의 모습을 못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오티스가 2003년 시즌 도중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보스턴에 트레이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스턴의 단장이었던 테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야구부문 사장이 이같이 말했다고 MLB.com이 25일 전했다.

엡스타인은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오티스의 에이전트가 2003년 5월 중순 찾아와서 더 많은 출장 기회가 있는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네소타에서 데뷔한 오티스는 2003년부터 보스턴으로 이적해 뛰고 있었으나, 첫 두달인 그해 4~5월 홈런을 2개 치는데 그쳤다.

엡스타인은 “에이전트에게 ‘우리도 오티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며 ‘로스터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당시 보스턴에는 1·3루를 함께 볼 수 있는 올스타 내야수 셰이 힐렌브랜드가 있었고, 3루에는 빌 뮬러, 1루에는 케빈 밀라가 있었다.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할 수 있는 오티스가 앉을 자리가 좁았다.

결국 보스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힐렌브랜드를 애리조나로 트레이드했다. 그 때 반대급부로 보스턴에 온 선수가 다름아닌 김병현이었다. 더 많은 기회를 잡은 오티스는 2003년 처음으로 30홈런·100타점 고지를 밟았고(31홈런·101타점), 이듬해를 포함해 보스턴의 세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반면 트레이드된 힐렌브랜드는 2007시즌을 끝으로 빅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당시 엡스타인의 선택이 보스턴과 오티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왔고, 오티스는 ‘빅 파피’라는 별명을 얻으며 보스턴에서 사랑받는 스타가 됐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