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동자는 또렷하다. 피부에는 옅은 검버섯까지 피었다. 조각은 말이 없지만, 미세한 몸짓으로 관객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극사실주의’ 조각의 거장 론 뮤익(67)의 작품들이 그렇다.
지난 11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전에서 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뮤익의 30여년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명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호주 출신 조각가인 뮤익은 방송·영화에 쓰이던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다가 1996년부터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들을 내놓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뮤익이 만들었던 조각 작품 48점 중 10점이 프랑스, 대만 등 6개국의 기관·개인 소장자들로부터 모였다. 가장 눈에 띄는 대표작은 가로·세로·너비가 각각 1m를 넘는 대형 두개골 조각 100개를 배치한 ‘매스(Mass)’다. 뮤익이 프랑스 파리의 카타콤(지하 묘지)에 수백 년간 쌓이고, 무너진 뼈들을 보고 2016~2017년 제작했다. 전시 장소에 따라 두개골의 배치를 달리하기 때문에 전시마다 형태와 맥락이 달라지는 게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지하 1층 5전시실의 최고 높이 14m 공간에 두개골이 층층이 쌓여 있다. 공간 맨 위, 지상과 통하는 창문과 거의 맞닿을 정도로 두개골은 높이 쌓였다. 각 두개골 조각은 실제 인간 두개골의 형상을 본떴으며, 치아 형태가 다를 뿐 서로 닮았다.
두개골 더미가 일으키는 감정은 생동감보다는 허무함에 가깝다. 특이한 것은 뮤익이 사람을 묘사한 조각들 또한 살아있는 사람과 닮았는데도 생동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눈·코·입과 머리카락까지 빠짐은 없는데 표정은 무표정에 가깝다. 길이 6.5m, 높이 4m에 이르는 2005년 작품 ‘침대에서’는 이불을 덮고 베개에 머리를 기대어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했다. 왜 누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2013년 작 ‘젊은 연인’은 앞에서 볼 때 다정한 10대 남녀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지만, 뒤에서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남성이 여성의 오른 손목을 붙잡았는데, 여성의 손바닥은 뒤를 향한 채 손목이 살짝 꺾여있다. 고개 숙인 채 조용히 사랑을 속삭이는 줄 알았던 연인의 표정도 달리 보인다. 평면의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조각에서만 가능한 발견이다. 전시장 초입의 2002년 작 ‘마스크 Ⅱ’는 작가의 얼굴을 옆으로 눕힌 조각이다. 길이가 1m 넘는 작가의 얼굴에 눈코입과 수염 자국까지 묘사돼 있는데, 뒤로 돌아서면 뒤통수가 없다. 조각이 작품명 그대로 얼굴의 형상을 한 가면 형태이기 때문이다.
뮤익의 작품은 사실적이지만, 현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전시작 중 최근작인 2019년 작 ‘치킨/맨’에서 테이블 앞에 앉은 속옷 차림 남성은 몸의 검버섯과 점까지 세세하게 표현됐지만, 그가 닭과 눈싸움을 하는 모습은 현실적이지 않다. 크기 또한 다르다. ‘침대에서’처럼 사람의 키를 훌쩍 넘거나, 높이가 80㎝에 불과한 ‘젊은 연인’, ‘치킨/맨’ 처럼 인체보다 작다. 뮤익은 실제와 다른 크기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이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론 뮤익 스튜디오의 찰리 클라크 협력 큐레이터는 지난 10일 언론공개회에서 “관객이 현실과 다른 공간에 놓여있고, 실제와 혼동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뮤익은 관객이 작품과 공감하길 원한다. 작품의 특징에 단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징을 통해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뮤익의 작업은 현대인의 일상 속 외로움과 취약함, 내면의 감정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것은 작품들과 눈 맞춤 해보는 것”이라며 “조각들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상상한다면, 감상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즐거운 경험을 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프랑스 시각 예술가 고디에 드블롱드가 찍은 뮤익의 작업실 사진 12점, 드블롱드가 뮤익의 작업을 담은 다큐멘터리 2편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7월13일까지. 관람료는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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