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쿠데타
클레어 프로보스트·매트 켄나드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364쪽 | 2만5000원

ISDS.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손해를 끼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2년 11월 제기한 국제소송의 공식 명칭이다. 10년이 채 흐르기 전인 2022년 8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319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23년 4월까지 ISDS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로펌에 433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ISDS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건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캐나다의 광산 회사는 중미의 엘살바도르 정부가 자신들이 광산에서 찾은 금을 캐지 못하게 막았다는 이유로 3억달러(약 438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2009년 ISDS를 신청했다. ICSID는 엘살바도르 정부의 손을 들었지만, 정부는 광산 회사로부터 소송 비용을 일부 받았음에도 추가 소송 비용으로만 400만달러(약 59억원)를 지출해야 했다.

기업은 자본과 권력으로 정부의 주권까지 위협한다. 영국 런던 탐사보도센터 회원인 저자들은 전 세계 25개국을 다니며 그 현장을 알렸다. 저개발국에 대한 원조 자금은 그 나라 정부나 단체에 직접 전해지기보다는 다른 기업에 전달돼 집행된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은 저개발국에 진출해 사업을 넓히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 골몰한다.

경제특구는 지역의 경제지표를 개선했지만 빈부 격차는 늘렸다.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문제, 노동자들의 권익이나 단체 행동이 침해되는 문제 등도 발생했다.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의 과격 시위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무기를 사용한 뒤 ‘성능 인증’을 받았다며 해외에 되팔기까지 한다.

선진국과 저개발국을 넘나들며 벌어진 기업의 ‘소리 없는 쿠데타’를 저자들은 “수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연대해 용감하게 맞서 싸우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