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움츠렸던 꽃들이 기지개를 켜면 야구 시즌의 막도 함께 오른다. 꽃들과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만 봄을 기다린건 아니다. KBO리그 베테랑들도 개막을 고대해왔다. 직전 오프시즌 베테랑들에게 불어닥친 한파를 딛고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8시즌을 앞두고 KBO리그에 미국 진출 선수들의 유턴, ‘S급’ 자유계약선수(FA)들의 고액 계약 소식이 연일 들렸다. 그러나 위기에 몰린 베테랑들의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5년간 평균 100여경기 이상을 뛰며 LG 내야를 책임졌던 손주인(35)은 2차 드래프트로 친정팀 삼성에 이적했다. 그 때쯤 LG가 정성훈(38)을 방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불과 얼마전까지 주전으로 뛴 선수들이었지만 팀은 더 이상 그들을 보호선수 명단에 넣지 않았다.

NC 최준석. NC다이노스 제공

NC 최준석. NC다이노스 제공

FA 시장도 베테랑에게는 매몰찼다. 채태인(36)과 최준석(35)은 원 소속팀이 보상금을 받지 않고 ‘FA 사인 후 트레이드’를 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영입하려는 팀이 없었다. 한화의 정근우(36)는 여전히 리그 정상급 2루수였지만, 원 소속팀과의 협상에서 계약기간을 놓고 이견을 보이며 자존심이 상했다.

최상급 선수들에게 거액을 투자하는 대신, 기량이 비슷하면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 흐름이 각 구단에 자리잡았다. 그 탓에 베테랑들은 선수생활의 기로에 몰리기까지 했다. 적잖은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었지만, 친정·고향팀들과 옛 스승이 손을 내밀어 보금자리를 찾은 이들도 있었다. 정성훈은 자신의 고향팀이자 첫 프로 데뷔팀 해태의 후신 KIA와 손을 잡았다. 채태인에게 롯데는 친정팀이 아니지만 어린 시절 뛰어보길 꿈꿔왔던 고향팀이다. 최준석은 고향인 부산을 떠나 NC로 갔지만, 두산 시절 자신을 중용했던 스승 김경문 감독과 재회했다.

한화 정근우. 김기남 기자

한화 정근우. 김기남 기자

비슷한 연령대 선수들은 동료들의 힘겨운 겨우나기를 보며 “베테랑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단순히 동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것만은 아니다. KIA의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도 이범호·김주찬·최형우 같은 베테랑들이 팀을 이끌고 뒤를 어린 선수들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베테랑들은 다시 찾아온 봄에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그라운드를 밟는다. 정근우·손주인은 여전히 주전 내야수로 시즌을 치러낼 준비를 마쳤다. 채태인은 1루 수비로, 정성훈은 오른손 대타로 여전히 활용가치가 있다. 최준석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호준이 NC 덕아웃에서 한 역할을 해주리란 기대를 받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