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유희관이 지난 7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에서 불펜피칭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지난 8일 마무리된 두산의 스프링캠프 투수조 명단엔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낯선 이름이 여럿 보였다. 신인 투수는 한 명도 없었지만 2018~2019년 입단한 투수들이 여럿 이름을 올렸고, 2013~2015년 입단했음에도 1군 출전 경력이 전무한 투수들도 캠프를 완주했다. 가뜩이나 두터운 두산 마운드에서 틈새 같은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에 캠프에는 활기가 넘쳤다.

두산 투수조장 3년차를 맞는 유희관(34)에게도 이 광경은 낯설었다. 일본 미야자키 캠프 현장에서 만났던 유희관은 “제가 경험했던 캠프 중에서 투수들 연령대가 제일 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은 최근 투수 자원이 풍족한만큼 각 보직별 주인을 비교적 분명히 정해놓은 채 캠프를 치렀다. 두산 불펜에는 베테랑 투수들도 적지 않다. 젊은 투수들이 여럿 포함된 캠프가 유희관에게는 낯설법 했다.

두산이 호주 질롱과 미야자키에서 실전 경기를 치르는 동안 유희관은 투수들과 삼삼오오 모여 후배들의 투구를 지켜보곤 했다. 캠프 초반엔 팀에 처음 합류한 외인 선수들과 농담을 건네고 챙겨주기 바빴다면 귀국일이 가까울수록 투수들의 투구를 바라보는 유희관의 눈빛엔 진지함이 담겼다. 유희관은 “거의 매 경기 후배 투수들의 투구를 보고 숙소에서 코멘트를 해주는 편”이라며 “전에는 캠프에 오면 제 운동하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잔소리를 많이 한다. 이번 캠프에서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FA 자격을 눈앞에 둔, 개인 성적에 집중하고픈 시즌을 앞두고도 캠프 ‘잔소리꾼’을 자청했다. “선배들이 했던 따뜻한 말보다는 따끔한 조언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왜 안좋았는지’를 지적받으면서 되돌아보는 게 많았다”고 했다. 때문에 이번 캠프 유희관도 칭찬보다는 충고를 많이 했다. 지난해 캠프에서는 2018년 흔들렸던 입지를 만회하는 데 애썼다면, 올해 캠프에선 되찾은 여유 속에서 책임감을 더 발휘했다. 유희관은 “FA를 맞으니 주변에서는 ‘조장을 물려주라’고도 했다”면서도 “두산만의 끈끈하고 분위기 좋은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며 투수조장을 맡은 이유를 댔다.

두산 유희관이 지난 5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에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운동 때는 집중해라.” “함께 러닝할 때는 ‘파이팅’ 소리내며 하자.” 유희관은 캠프 기간 가장 많이 하던 말을 되짚었다. 또 “평소에 선수들 모아놓고 ‘소중한 기회이니 잡으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유희관 역시 우연일 정도로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잘 잡아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2013년 5월, 당시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갑작스레 등부상을 당해 유희관은 갑작스레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그 경기에서 5.2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이후 86승을 더 거두며 두산 왼손 투수의 역사를 바꿔나갔다.

대중들 앞에서의 달변과 느린 구속에 저평가되기 일쑤였지만 프로야구 4번째 ‘7년 연속 10승’을 거둔 유희관은 쌓아온 업적으로도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유희관은 “올해까지 10승을 하면 (장)원준이 형과 타이를 이룬다”며 “그 기록에 대해서는 애착과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편견에도 익숙해졌지만 “꾸준히 야구를 잘 하다보면 편견이 더 줄어들테고, 은퇴할 즈음에는 인정받는 기록을 남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희관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어느덧 두산에서의 은퇴식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세월의 변화도 ‘두산 선배 유희관’의 책임감을 더 키운 것 같았다. 팀의 세대교체가 화두로 떠오른 것을 잘 아는 유희관은 “젊은 선수들이 실력을 키워 기존 자리 잡은 선수들도 긴장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난다”며 후배들에 대한 당부를 조금 더 보탰다.

“두산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강하게 가졌으면 해요.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두산이 ‘화수분’의 명성을 이었고 강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자키|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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