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휴스턴과 보스턴이 맞붙은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하는 랜스 버크먼.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해 휴스턴과 보스턴이 맞붙은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하는 랜스 버크먼. 게티이미지코리아

“18시즌 통산 309홈런, 1261타점, 2247안타, OPS 0.933” 대 “15시즌 통산 366홈런, 1234타점, 1905안타, OPS 0.943” 

메이저리그를 한 때 풍미한 두 타자들의 통산 성적이다. 언뜻 큰 차이가 보이는 것 같진 않지만 전자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반면 후자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 후보에 오르고도 첫 투표만에 후보 자격을 상실했다. 전자는 시애틀의 레전드 에드가 마르티네스, 후자는 휴스턴, 세인트루이스 등에서 뛴 랜스 버크먼이다. 

지난달 23일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가 발표한 올해 명예의 전당 헌액 투표 결과 마르티네스는 무려 ‘10수’ 끝에 헌액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헌액 기준선인 득표율 75%를 넘는 85.4%의 높은 지지를 얻어 기어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마르티네스는 올해도 헌액되지 못하면 10번의 투표 기회를 모두 채워 투표를 통한 헌액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반면 버크먼은 올해 처음 후보에 올랐으나 내년부터는 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없게 됐다. 5% 이상 득표해야 다음해에도 후보가 될 수 있는데, 버크먼의 득표율은 1.2%로 총 5명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사상 첫 만장일치 헌액에 성공한 마리아노 리베라와 마지막 기회 끝에 헌액된 마르티네스 등 다양한 이야기에 묻혀졌지만, 버크먼 개인이 느낀 후보 탈락 아쉬움은 컸던 모양이다. 미국 ‘폭스 26’의 기자 마크 버먼은 지난 6일 버크먼을 만나 촬영한 영상을 트위터에 공개하며 버크먼이 아쉬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영상 속 버크먼은 “85%의 지지를 받은 마르티네스와 비슷한 커리어를 보낸 내가 5%도 안되는 지지를 받은 걸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마르티네스와 버크먼의 통산 성적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를 느끼긴 어렵다. 타점과 안타수에서는 마르티네스가 앞서지만 홈런 수는 버크먼이 앞선다. OPS(출루율+장타율)에서도 버크먼이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베이스볼레퍼런스가 측정한 통산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에서는 마르티네스(68.4)가 버크먼(52.1)을 크게 앞서지만, 연평균으로 나누면 그 격차(마르티네스 3.8-버크먼 3.47)는 조금 더 줄어든다.

버크먼이 현역 시절 1루수와 좌익수, 우익수 등을 오가는 동안에서 수비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티네스도 커리어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보낸만큼 수비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마르티네스가 시애틀에서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한데 반해 버크먼은 2011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리그 최우수선수 후보에 올라 7위 이내에 들었던 횟수도 버크먼(6회)이 마르티네스(2회)보다 많다. 

마르티네스도 10번의 시도만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긴 했지만 첫 해 득표율은 36.2%였다. 버크먼이 기록한 적은 득표율(1.2%)이 억울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결국은 통산기록과 스토리의 차이가 버크먼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부상 때문에 15시즌만에 은퇴한 버크먼은 명예의 전당 입성 안정권으로 꼽히는 통산 ‘3000안타’는커녕 2000안타도 채우지 못했다. 게다가 올해 투표에는 만장일치 여부가 걸렸던 리베라, ‘10수 성공’ 스토리가 있던 마르티네스, 비운의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로이 할러데이 등 다득표자들이 적지 않았고, 여기에 ‘약물 논란’이 얽힌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도 이번에 적지 않은 표를 가져가면서 버크먼은 투표인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명예의 전당 투표인단이 선택할 수 있는 선수는 한 해 10명으로 제한된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