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을 따라 만난 고대 이집트’ 下편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에 전시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황금, 황금, 그리고 또 황금…,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는 황금빛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지난달 10일, 이집트 기자에 위치한 이집트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GEM)의 투탕카멘실. 투탕카멘 무덤에 있던 유물 약 5400점을 그대로 옮겨온 이곳의 한 가운데에서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사진을 찍기 위해 세계 각지의 관람객 수십 명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배경 속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던 황금 마스크가 단연 인기를 끌었지만, 투탕카멘실의 다른 유물들도 마스크 못지않은 황금빛을 뿜고 있었다.

1992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건립 계획을 밝힌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GEM은, 2024년 10월의 부분 개관을 거쳐 지난해 11월1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투탕카멘실은 공식 개관과 함께 문을 열었다. 이티원이 주최·주관하고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후원하는 ‘이집트 문명탐사단’도 2026년 1차 여정에서 처음으로 투탕카멘실의 위용을 체험했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 내 황금마스크를 촬영하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다 .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잊혀질뻔한 파라오 투탕카멘

투탕카멘(Tutankhamen). 당시의 최고 신이던 태양신 아멘의 이름을 빌려 ‘아멘의 살아있는 형상’이라는 뜻을 지닌 이 파라오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집트에 깊은 관심이 없다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와 같은 대형 유적이나 람세스, 클레오파트라 등 다른 파라오의 이름과 머릿속에서 뒤엉키게 된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외계인의 작품이라거나,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투탕카멘의 저주’ 같은 자극적인 음모론은 두려움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본관의 전경.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이집트 문명탐사는 투탕카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는 시간이기도 했다. 피라미드와 여러 시대의 무덤과 신전을 보면 고대 이집트의 공통적인 건축 및 표현 양식을 알게 되고,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의 반복되는 설명을 들으면 고대 이집트사의 연대기도 정리된다. 고왕국 시대(기원전 27~22세기)에 성행했던 피라미드는 투탕카멘과 람세스 2세가 살던 신왕국 시대(기원전 15~11세기)와 전혀 다른 시기의 유적이라는 것도, 피라미드 내부에 잘 보이지 않던 벽화는 신왕국 시대 파라오의 무덤에서는 등장한다는 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60여 년간 오래 재위했던 파라오인 람세스 2세는 많은 대형 유적과 업적으로 유명하지만, 투탕카멘은 업적이 적었던 탓에 역설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사실도 배운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의 다신교 체제를 유일신교로 바꾸고 수도를 아마르나로 옮긴 파라오 아케나텐의 아들이자 후임 파라오였다. 아케나텐 사후 아마르나는 사실상 버려졌고, 다신교 체제와 수도(테베)는 모두 원상 복귀됐다. 파라오 즉위 때 10대에 불과했을 ‘이단아 아케나텐의 아들’ 투탕카멘보다는 그 주위의 신관 등 기존 기득권층이 회귀를 주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투탕카멘은 재위 기간을 채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한다.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 내의 투탕카멘 무덤에 남은 그의 미라를 보면 그 체구가 작아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유물은 어떻게 빛을 찾았나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에 전시된 투탕카멘의 마스크와 관, 성소의 매장 순서 모형.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고대 이집트사에서 잊히는 듯했던 투탕카멘의 이름은 1922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의 하워드 카터에 의해 부장 유물이 거의 대부분 도굴되지 않은 투탕카멘 무덤이 발견된 것이다. 도굴은 현대인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도 저질러 왔다. 파라오가 생전부터 크게 지었던 피라미드나 무덤에는 수많은 유물이 함께 묻혔는데, 유명한 파라오의 것일수록 도굴꾼의 먹잇감이 됐다. 후대 파라오가 선대 파라오 때 세운 신전 등의 유적을 찾아가 그곳에 새겨진 선대 파라오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일도 많았다. 여느 파라오든 대체로 같은 표현 양식을 사용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던 장치는 고대 문자로 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투탕카멘은 당대에 이름난 파라오가 아니었기에 도굴을 피한 채 수천 년간 화려한 유물을 품에 지킨 것으로 추측된다. 20세기 이전 유럽 열강의 발굴 경쟁에 유물의 유출을 막을 수 없었던 이집트는 투탕카멘의 유물만큼은 반출을 엄격하게 막았다. 그 덕에 GEM에서 투탕카멘 무덤의 부장 유물을 한데 모은 투탕카멘실을 만들 수 있었다. 투탕카멘 무덤 속 유물은 이집트 내에서 꾸준히 공개돼왔지만, GEM이 건립되기 전에는 모든 유물 약 5400점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전시되는 일은 없었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을 전 세계의 관광객이 둘러보고 있다 .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황금마스크에만 머물 수 없는 눈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관람객의 뜨거운 관심을 항상 받는 것처럼, 투탕카멘실에서는 황금 마스크가 주인공 격이다. 하지만 함께 전시된 유물들의 자태도 그에 못지않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투탕카멘의 미라는 황금관 1개와 목제 금박관 2개, 석관 1개와 성소 4개로 겹겹이 보관됐다. 투탕카멘의 얼굴을 덮은 마스크와 무덤까지 치면 10중으로 매장한 것이다. 사람 모양의 관에는 세밀하게 파낸 선들이 정교한 무늬를 이뤘다. 무늬가 이룬 작은 공간마다 배치된 푸른색과 붉은색, 하늘색이 화려함을 더했다. 관을 여러 겹으로 담았을 대형 성소는 그 높이가 현대인보다도 훌쩍 컸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에 전시된 투탕카멘의 왕좌.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투탕카멘이 앉았을 의자에는 그의 아버지 아케나텐이 열었던 ‘아마르나 시대’의 표현 양식이 남아 있다. 등판의 가운데 상단에선 투탕카멘 즉위 당시 유일신이던 아텐이 아래로 광선을 뿜고, 그 아래 왕좌에 앉은 투탕카멘의 몸에 왕비가 기름을 바르고 있다. 한쪽 팔을 의자 뒤편에 괴고 있는 투탕카멘의 모습은 역시 고대 이집트의 전형적인 표현과는 다르다. 왼쪽 손잡이에는 투탕카멘의 옛 이름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형상)이 적혔다. 물론 의자를 휘감고 있는 금빛이 강렬해 이런 표현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나무와 금 외에도 은과 붉은빛의 보석인 홍옥수, 상아 등이 쓰인 호화 유물이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투탕카멘실에 전시된 배.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나무로 만든 6척의 배는 파라오가 사후에 태양신 라처럼 하늘을 건너 사후세계를 항해하라는 의미로 함께 묻혔다. 낮에 탈 주간용 배 ‘마아네제트’와 밤에 탈 야간용 배 ‘메세케테트’를 함께 묻었다. 한참 시든 꽃다발은 어쩌면 투탕카멘실에서 가장 형체가 불분명한 유물이지만,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유물들 사이에 쉽게 시드는 꽃을 왜 놓았는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GEM, 그리고 ‘이집트 문명탐사’의 가치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쿠푸의 배 박물관’ 내 전시된 태양의 배.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GEM의 볼거리는 투탕카멘실 외에도 많다. 길이 44m에 이르는 ‘태양의 배’를 위한 별도 전시관인 ‘쿠푸의 배 박물관’도 지난해 11월 공식 개관 때 처음 문을 열었다. 태양의 배는 파라오 쿠푸의 대피라미드 남쪽 면에서 1954년 발굴됐다. 쿠푸의 후계자였던 파라오 제데프라가 사후의 쿠푸를 위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투탕카멘실의 배처럼, 쌍을 이루는 또 다른 태양의 배가 가까이에 묻혀있으리란 추측이 있었다. 추측은 1987년 일본 와세다대 조사팀이 ‘제2의 태양의 배’가 묻힌 구덩이를 발견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전시관에서는 이미 복원된 제1의 태양의 배와 함께 보존처리 중인 제2의 태양의 배를 볼 수 있는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배는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이다.

본관 건물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오르막 계단(Grand Staircase)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파라오들의 조각이 줄지어 서 있다. 무빙워크를 타고 파라오들을 살피다 끝에 다다르면 쿠푸의 대피라미드와 카프라의 피라미드 전경이 눈에 보인다. 기자의 대피라미드군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의도가 설계에 반영됐다. 메인 전시실은 고대 이집트의 연대를 네 기간으로 나눠 각 기간별로 왕족의 생활상, 다신교 신앙, 사회상을 살피도록 총 12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본관의 오르막 계단에는 여러 파라오들의 석상이 서 있다.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전시실의 많은 유물을 보면서도 고대 이집트의 유구한 역사를 가늠할 수 있지만, 이집트 문명탐사는 그보다 더 많은 피라미드와 무덤, 신전을 보며 피상적이던 고대 이집트와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많은 유적과 유물을 보고서도 ‘아직 다 보지 못했다’는 미련이 남았다.

아케나텐과 투탕카멘실을 품은 GEM만을 소개한 것은, 2020년부터 진행된 ‘이집트 문명탐사’에서 수많은 피라미드와 무덤, 신전에 직접 들어가는 일정이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일정과 경험이 함께하는 이집트 문명탐사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수고를 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이집트 기자 이집트 대박물관(GEM) 본관의 오르막 계단의 끝에 이르면 쿠푸의 대피라미드 등이 보인다. 기자(이집트) ❘ 윤승민 기자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