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하듯 그림을 그린다. 연기하듯 노래한다. 그림을 그리듯 연기한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 별관에는 4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개인전 ‘Seoul Syntax’를 여는 백현진(54)을 소개하는 글이 쓰여 있다. 그가 배우이자 음악가이고, 미술가이기 때문에 이 문장은 사실에 가깝다. 그저 드라마 <모범택시>와 <무빙>, <직장인들>에서의 맹활약으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대중에게 너무 커졌을 뿐이다.
백현진은 ‘유명해지니 미술에도 손을 뻗은 연예인’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1996년부터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지난해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인전을 연 경력 약 30년의 미술가다. 최근 몇 년간 배우로 소화하는 일정이 많아지면서, 전시장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웠을 뿐이다.
3일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백현진은 “원래 무리하지 않으며 사는 삶에 관심이 많고 실천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음악가로, 미술가로, 배우로 살면서 뭔가 저도 모르게 무리를 많이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단체전 참석차 방문한 노르웨이에서 그는 “마음이 복잡하고 많이 가라앉은 상태”, 전에 느껴보지 못한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했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 중인 그림과 영상 31점 중 3점을 빼고는 모두 마음의 어려움을 겪던 지난해 만든 것들이다.
높이가 작게는 26㎝, 크게는 2.13m로 다양한 전시작들은 대부분 여백을 보인다. 전시작 중 큰 그림은 캔버스 대신 한지의 일종인 장지를 재료로 사용했다. 그는 “젊을 때는 그림을 덜 그리면 뭔가 불안했다. 예전 그림은 밀도가 높았다”며 “장지에 붓질을 할 떄 몸이 좀 편하더라. 많이 비워지는 그림들도 물리적으로 제 몸에 굉장히 맞는 그림들”이라고 말했다.

백현진은 “어떤 그림을 그릴 때든, 제가 보고 싶어하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한다”며 “(번아웃이 왔던) 그 당시에 보고 싶었던 그림이 이런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그림들을 그려낸 뒤 술·담배를 끊고 조깅을 하며 지금은 상태가 좋아졌다”며 “지금 이 그림을 보니 ‘무거운 시간을 통과하며 이런 기록이 남았구나’ 느껴진다”고 말했다.
백현진은 2000년대 초부터 독립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로 배우 경력도 길다. 2020년대 <모범택시>를 기점으로 더욱 대중적인 작품으로까지 보폭을 넓혔을 뿐이다. 바빠진 배우 생활이 번아웃의 원인이었을까. 백현진은 “배우로서 현장에서 지내는 시간은 1년에 40~60일 정도다. (본인의 연기가 담긴) ‘숏츠’가 많아서 다작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며 웃었다.
백현진은 “저는 (스스로) ‘전방위 예술가’라고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며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하다 보니 직업으로 배우, 미술가, 음악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가 생활도 1994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한 뒤 시작했다. 그와 음악을 처음 같이한 장영규와 결성한 게 ‘어어부 프로젝트’다.

미술과 음악, 연기를 계속해 온 시간의 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백현진은 어느 하나에 특별히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배우와 음악가로 일하면서, 미술가로만 살 때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미술가로 일할 때 굉장히 좋은 영향을 준다”고도 했다. 최근 배우로서 누리는 넉넉한 수입은 그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뱃심이 돼 “눈치 안 보고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백현진도 한때는 ‘다른 일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집중할지’를 고민했지만 “화가로만 일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배우로 악역 연기를 하다 힘들어진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백현진은 <모범택시>에 나온 악역 박양진을 연기하면서 “가짜였지만 사람들을 계속 때리는 역할을 하는데 몸이 진짜 아프더라”며 “작업실에서 붓질하고 있으면 그런 게 전환이 되니 버텼던 것 같다. 세 가지를 다 하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배우로도, 미술가로도 백현진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대중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지만 물론 그에게 그림은 “제가 하는 일 중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다. 그는 요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 그린 그림을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백현진은 “나 혼자 그림에 대해 생각할 때와, (AI와) 둘이서 왔다갔다할 때도 뭐가 다른 게 나올 수 있을까 탐구 중”이라고 했다. 이 실험을 작품과 전시로 구현해보고자 “캔버스도 주문했고 며칠 전에 작업실 대청소도 했다”며 “몇 년 작업을 해서 한 2~3년 뒤에는 개인전에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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