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정지석이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3세트 7번째 블로킹 득점을 올리고 환호하고 있다. 인천 이석우 기자

 

2020 도쿄 올림픽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남·녀배구 대표팀으로 올림픽 예선을 치른 선수들 여럿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지석(25·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여자배구 김연경, 이재영, 김희진처럼 부상에 시달린 건 아니지만 올림픽 예선 후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프로배구 V-리그가 5라운드 막바지를 향해가는 시점에서야 정지석은 점차 살아나고 있다. 14일 인천 홈에서 열린 KB손해보험전에서는 그 상승세가 절정에 달했다. 양 팀의 외인 공격수보다 많은 23점을 올리는 동안 블로킹 7개, 후위공격 4점, 서브 3점으로 트리플크라운(블로킹·후위공격·서브 3점 이상)까지 달성했다. 한 경기 개인 최다 블로킹 기록도 새로 썼다.

경기 후 정지석은 “팀의 분석관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함께 상대 공격 코스를 많이 연구했다. 분석이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는 분석이 잘 맞았다”며 “평소대로 했는데 운이 좋았다”며 기록 달성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내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고 팀은 뒷전이었지만, 지금은 팀을 위해 플레이해야 개인기록이 따라오는 것 같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개인 성적이 빛났던 이날, 올림픽 예선 이후 느꼈던 고충도 털어놓았다. 정지석은 “예선 직후 잘 안풀렸을 때, 감독님이 저에게 여러 피드백을 해주셨다”며 “그럼에도 잘 안되자 감독님이 오히려 조언을 안 해주셨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더 편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정지석을 향한 말을 줄인 가운데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제 조금 본인의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라며 “멘털도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 컨디션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원래 블로킹 기량이 뛰어난 선수다. 블로킹과 수비 자리를 철저히 임하고 연구하는 선수”라는 말로 칭찬했다.

변화의 계기는 정확히 짚을 수 없지만, 정지석은 팀 동료들에게서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나이 많은 (한)선수형이나 (곽)승석이 형도 잘해주고, (김)규민이 형은 입대 앞두고까지 놀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저만 제대로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정지석은 또 “팬들도 안타까워해서 저에게 쓴소리 많이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제게 ‘괜찮냐’고 하셨다.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난건 아니지만 마음가짐이 서서히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바뀐 마음가짐은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어느 순간 ‘내가 이지경까지 왔구나’ 싶어서 연습 때 간절해지고 노력도 많이 하게 됐다”며 “제가 잘 플레이했을 때의 영상을 찾아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도 했다.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데뷔했던 정지석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어느덧 리그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로 떠올랐고,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돼 거액의 연봉(5억8000만원)까지 품에 안았다. 올 시즌에는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정지석은 “잘 안풀리면 쫓기듯 불안했다.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자곤 했다”고 돌아봤다. 이제 정지석은 예전의 자신감을 더하고 팀 성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