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남·녀배구 대표팀으로 올림픽 예선을 치른 선수들 여럿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지석(25·대한항공)도 마찬가지다. 여자배구 김연경, 이재영, 김희진처럼 부상에 시달린 건 아니지만 올림픽 예선 후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프로배구 V-리그가 5라운드 막바지를 향해가는 시점에서야 정지석은 점차 살아나고 있다. 14일 인천 홈에서 열린 KB손해보험전에서는 그 상승세가 절정에 달했다. 양 팀의 외인 공격수보다 많은 23점을 올리는 동안 블로킹 7개, 후위공격 4점, 서브 3점으로 트리플크라운(블로킹·후위공격·서브 3점 이상)까지 달성했다. 한 경기 개인 최다 블로킹 기록도 새로 썼다.
경기 후 정지석은 “팀의 분석관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함께 상대 공격 코스를 많이 연구했다. 분석이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는 분석이 잘 맞았다”며 “평소대로 했는데 운이 좋았다”며 기록 달성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내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고 팀은 뒷전이었지만, 지금은 팀을 위해 플레이해야 개인기록이 따라오는 것 같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개인 성적이 빛났던 이날, 올림픽 예선 이후 느꼈던 고충도 털어놓았다. 정지석은 “예선 직후 잘 안풀렸을 때, 감독님이 저에게 여러 피드백을 해주셨다”며 “그럼에도 잘 안되자 감독님이 오히려 조언을 안 해주셨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더 편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정지석을 향한 말을 줄인 가운데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제 조금 본인의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라며 “멘털도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 컨디션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원래 블로킹 기량이 뛰어난 선수다. 블로킹과 수비 자리를 철저히 임하고 연구하는 선수”라는 말로 칭찬했다.
변화의 계기는 정확히 짚을 수 없지만, 정지석은 팀 동료들에게서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나이 많은 (한)선수형이나 (곽)승석이 형도 잘해주고, (김)규민이 형은 입대 앞두고까지 놀지도 않고 열심히 했다. 저만 제대로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정지석은 또 “팬들도 안타까워해서 저에게 쓴소리 많이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제게 ‘괜찮냐’고 하셨다.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난건 아니지만 마음가짐이 서서히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바뀐 마음가짐은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어느 순간 ‘내가 이지경까지 왔구나’ 싶어서 연습 때 간절해지고 노력도 많이 하게 됐다”며 “제가 잘 플레이했을 때의 영상을 찾아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도 했다.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데뷔했던 정지석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어느덧 리그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로 떠올랐고,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돼 거액의 연봉(5억8000만원)까지 품에 안았다. 올 시즌에는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정지석은 “잘 안풀리면 쫓기듯 불안했다.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자곤 했다”고 돌아봤다. 이제 정지석은 예전의 자신감을 더하고 팀 성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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