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특검 ‘VIP 지시’ 진술·자료 확인
ㆍ청·국정원 “진보 작가 배제” 개입…대통령 직권남용 혐의 조사 확대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우수도서’(세종도서) 선정 사업과 관련해 “ ‘문제서적’은 단 1권도 선정해선 안된다”고 문체부에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수도서 선정 사업은 매년 교양·문학·학술 등의 분야에서 ‘좋은 책’을 뽑아 발표하고 공공도서관과 초·중·고교, 지역아동센터 등에 배포하는 것으로 문체부가 1968년부터 해온 사업이다.

9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현직 문체부 직원들의 진술과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박 대통령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활용의 일환으로 추진된 ‘진보 성향 작가·출판사 우수도서 선정 배제’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57)을 통해 ‘VIP(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직후 우수도서 선정 기준과 방식을 변경했다. 

특검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이 우수도서 사업과 관련해 문체부에 ‘단호한 태도’를 요구한 데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핵심 참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 무렵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회의록과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70) 재직 당시 문체부에 출입하는 국정원 정보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진보 성향의 작가가 쓴 책들을 정부가 우수도서로 선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체부는 2015년 1월21일 공개한 ‘2015년도 우수도서 선정 사업 추진방향’에서 문학 분야 선정 기준으로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과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를 제시했다. 당시 사상 검열 논란이 일자 문체부는 “공익성과 보편성을 담은 도서 콘텐츠를 국민에게 보급하는 게 사업 취지에 부합한다”고 해명했다. 

그간 문체부 장관상을 수여해온 ‘전태일청소년문학상’도 내부 기준 변경을 이유로 장관상 수여 대상에서 배제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2012년 8월 이 문학상을 주관하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다가 유족 반대로 무산돼 수모를 겪은 바 있다. 

특검은 우수도서 선정 사업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지시가 출판 부문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효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조사할 방침이다.

박광연·윤승민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