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이라는 이름을 건 마지막 시즌. 2018년 히어로즈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우승팀 SK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여정을 시작한 히어로즈는 플레이오프(PO)에서 SK를 5차전 9회까지 압박할 정도로 강했다. 젊은 선수들의 공이 컸다. 외야수 임병욱. 내야수 송성문에 신인 투수 안우진까지 스타가 됐다.

또다른 히어로즈 마운드의 희망도 첫 선을 보였다. 고졸 2년차에 불과했던 좌완 이승호(20)는 팀이 PO 진출을 확정지은 준PO 4차전과 패배하면 탈락이 확정되는 PO 4차전에 각각 선발로 나섰다. 두 번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며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승호가 출전한 경기에서 히어로즈는 모두 이겼다. 준PO에서 3.1이닝 2실점, PO에서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 막바지에야 선발 기회를 얻은 선수치고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선보였다.

히어로즈 이승호.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히어로즈 이승호.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해의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새 시즌을 준비하는 이승호는 “투구 내용이 좋지 못해 아쉽다. 사사구를 너무 많이 내줬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11일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인훈련 도중 만난 이승호는 “포스트시즌은 긴 이닝을 던지려는 생각보다는 매 이닝 최선을 다해서 막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면서도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아 일찍 내려간 건 아쉬웠다”고 말했다.

아쉬움만 남은건 아니다. 이승호가 나선 경기에 팀이 모두 이겼기 때문에 처음 경험한 가을야구는 이승호에게 ‘값진 경험’ 이상의 기억으로 남았다. 이승호는 “김성민 선배님이 ‘에이스 브리검이 올라와도 팀이 지면 아무 소용 없는 거고, 네가 올라가서 팀이 이기기면 좋은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포스트시즌 때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히어로즈가 지난해 강조했던 ‘원팀’의 모습과 맞닿은 말이었다. 본인도 팀에 녹아들어 히어로즈의 깜짝 활약에 일익을 담당했다. 2017년 깜짝 트레이드가 있었기에 이런 활약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경남고 졸업 후 KIA에 2차 1라운드 신인으로 지명됐던 이승호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선배 손동욱과 함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도진 팔꿈치 부상 탓에 전 팀에서부터 8~9개월에 이르는 긴 재활을 했다. 그 기간이 이승호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래 가장 길게 야구를 쉰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승호는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기록했던 145㎞ 속구를 재활 후 여러차례 던지며 1군에서 주목하는 투수가 됐다. 지난해 32경기(선발 4경기)에 등판한 뒤 올 시즌 영웅 군단의 선발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렸다.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체인지업에 커브, 프로에서 익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지닌 이승호는 선발투수로서의 덕목을 여럿 갖췄지만 일단 “아프지 않고 1군에서 풀타임을 치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프로에서 통하기 위해 배워야할 것들을 몸으로 익혀나가고 싶다”며 “두산 김재환 선배와 겨뤄도 이기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각오도 전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