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째 이어지던 정국 혼란에도 침묵하던 태국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 개입에 나섰다. 군부가 예전만큼 정치 개입을 하기 어렵다는 예상도 나오지만 2006년 탁신 친나왓 총리를 실각시킨 군부 쿠데타 재현도 우려되고 있다.

 

참모총장, 여야 중재 밝혀… 실패 땐 쿠데타 가능성


프라윳 찬 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20일 방송 성명을 통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프라윳은 “그 동안 이어진 시위들이 국가 안보와 시민들의 안전, 공공재산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며 “평화를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계엄령 선포 후 군 병력들은 방콕 시내에 진입했으며, 방송국을 점거했다. 친탁신·반탁신 시위대는 이날 예정된 시위를 취소했다.


무장한 태국 군인들이 계엄령이 선포된 20일 수도 방콕의 경찰청 바깥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군인들은 이날 방콕 시내의 방송국 등을 점거했으며, 시내 주요 도로와 대형 쇼핑몰 등에 배치됐다. 방콕 _ AP연합뉴스


군부의 계엄령 선포는 현재 정국을 감안하면 의외로 볼 수 있다. 비록 지난 7일 헌법재판소의 잉락 친나왓 총리 해임 결정 이후 일각에서는 군부 개입 가능성을 내놓았지만 그 정도의 혼란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 이후 사망자가 28명까지 늘었지만, 우려와 달리 친탁신·반탁신 시위대 간의 대형 충돌은 없었다. 임시 정부와 상원도 잉락 친나왓 총리 실각 이후의 정부 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군부가 개입한 이상 최대 관심사는 군부 쿠데타로 이어질 것인가이다.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탁신과 달리 잉락은 군부와 크게 대립하지 않았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국방장관을 겸임했던 잉락은 인사권을 군부에 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1932년 입헌군주제가 시작된 이후 쿠데타가 18차례 벌어진 데 대한 서방사회의 우려도 군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계엄령 발표 후 성명을 통해 “정당들은 민주주의 원리를 존중하고, 군부는 폭력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일시적인 행동에만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부도 병력을 방콕 도심에 배치하면서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라윳은 이날 오후 “여·야 대표를 초청해 현 상황 타개를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혀 군부의 역할이 중재에 있음을 재강조했다. 

 

친탁신계에 잉락을 이을만한 차기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군부의 정치 개입은 반탁신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군부는 2006년 쿠데타 후 헌법을 수정하고 정치 활동을 제한해 탁신계의 정권 재창출을 막았다. 군부를 이끈 프라윳도 반탁신 세력을 이끄는 수텝 트악수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혈 사태가 벌어진 2010년 수텝이 부총리일 때 프라윳은 육군 참모차장으로 친탁신 시위대를 진압했다. 군부를 움직일 수 있는 왕권도 친탁신계를 지지하지는 않고 있다. 


김홍구 교수는 “푸미폰 국왕이 노쇠해 직접 군부를 움직일 수는 없어도, 헌법재판소·반부패위원회 등 독립 기관들에 포진한 왕당파 세력들이 군부를 종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탁신계에 유리한 상황… 임시 총리 사임 요구 거절


하지만 새 내각 구성이 지연될 경우 군부가 현 임시 내각을 해산하고 정부 구성에 직접 나서는 사실상 쿠데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친탁신계 니와툼롱 붐송파이산 임시 총리는 19일 상원의 총리·내각 사임 요구를 거절했으며, 야권과 반탁신계가 장악한 상원은 이날 새 내각 구성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 발표했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재총선 일정은 백지화됐다. 태국 정국의 운명은 다시 군부의 손에 놓여져 있다. 


계엄령 주도 육참총장 프라윳 찬 오차는 누구?
4년 전 친탁신 시위대에 실탄 발포한 왕당파


계엄령을 주도한 태국 군부 최고 실세인 프라윳 찬 오차 육군 참모총장(60)은 육군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왕당파이자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반대하는 반탁신파로 분류된다. 2010년 친탁신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90여명을 사망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태국 군부가 이번 계엄령을 놓고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려운 것은 그의 이러한 성향과 전력 때문이다.  


프라윳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에 의해 참모총장으로 임명된 때는 2010년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인사로 받아 들였다. 지나치게 빠른 초고속 인사였기 때문이다. 불과 4년 만에 부사령관에서 육군 참모총장으로 승진한 그의 전례는 태국 군 역사상 가장 빠른 승진으로 기록됐다. 

 

그의 빠른 승진 뒤에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첫번째는 탁신 친나왓 총리를 몰아낸 2006년 군부 쿠데타다. 200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는 별 두개인 육군소장에 불과했지만, 그해 9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후 1군 사령관으로 발탁됐고,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가 육군 참모총장으로 낙점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4~5월 벌어진 대규모 친탁신 시위 진압이었다. 군 내부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강경파로 꼽히는 그는 방콕을 점거하고 있던 탁신 지지자들에게 발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경 시위 진압을 진두지휘해 9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4개월 뒤 푸미폰 국왕은 그를 참모총장에 앉혔다. 당시 그와 함께 강경진압 목소리를 높였던 부총리가 현재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수텝 트악수반이다. 

 

철저한 왕당파인 그가 이번 계엄령을 왕실과의 사전 교감 없이 내렸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작 과도 정부는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