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파키스탄에서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통한 정보 수집 중단을 지시했다고 20일 가디언 등이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서한을 인용해 보도했다.

리사 모나코 백악관 대테러·국가안보 보좌관은 16일자로 미국 13개 공공보건 학교장들에게 보낸 편지에 “CIA국장이 2013년 8월부로 백신 프로그램과 참여 인원들을 정보 작전에 이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지난해 1월 학교장들은 가짜 백신 접종 프로그램으로 정보 활동에 나선 CIA를 비판하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냈다.

CIA는 2011년 5월 사살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위치를 찾기 위해 가짜 B형간염 백신 접종 캠페인을 펼쳤다. 백신 접종을 이유로 아이들의 피를 뽑은 뒤 DNA를 수집했고, 이를 대조해 빈 라덴과 가족들이 사는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이 사실은 2011년 7월 가디언 등의 보도로 알려졌다. 파키스탄 의사 샤킬 아프리디가 CIA의 활동을 도왔다는 사실까지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아프리디는 파키스탄 정보국(ISI)에 의해 체포됐고, 2012년 5월 반역 혐의 등으로 33년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에는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리언 패네타가 빈 라덴 제거를 위해 가짜 예방접종 캠페인을 벌였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어린이가 소아마비 예방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가디언캡쳐(http://www.theguardian.com/world/2014/may/20/cia-vaccination-programmes-counterterrorism)



그러자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 근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과, 소아마비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2012년 파키스탄의 지역 군부가 CIA의 드론 공격에 대한 보복조치로 소아마비 백신 접종 활동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 근절에 나선 활동가들과 이들을 보호하던 보안요원들이 지역 무장세력들과 주민들의 공격에 숨졌다. BBC는 2012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60여명이 소아마비 근절 활동중에 숨졌다고 전했다.

때문에 소아마비에 걸리는 파키스탄 아동들도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소아마비 근절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올해 전세계에서 파악된 소아마비 발병 사례 77건 중 61건이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년간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사례 93건을 훌쩍 넘길 기세다.

소아마비는 생명에 치명적인데다 완치가 어려워 예방 접종이 최우선의 해결책이다. WHO는 체계적인 예방접종 결과 1994년 서유럽, 2000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가 박멸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등에는 여전히 소아마비가 심각한 질병이다. 때문에 WHO와 공중보건 단체들은 이들 국가에서 아동들의 집을 방문해 소아마비 백신 접종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파키스탄은 백신 접종을 위해 벌어지는 가정방문이 정보 수집 활동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