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분쟁지역 곳곳서 공격 도구로 ‘성폭행’ 악용
ㆍ런던 국제회의 계기로 피해자 치료·가해자 처벌방안 마련 목소리 높아져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의 에스페란체 카비라는 “도시 인근에서 성폭행을 당한 나는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했다. 카비라는 내전 중이던 2009년 학교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 반군 르완다해방민주세력(FDLR) 병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카비라는 한 구호단체의 의학·심리사회적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카비라는 “DR콩고의 성폭행 피해자들이 모두 나처럼 치료를 받는 게 아니다”라고 지난 9일 가디언에 말했다. DR콩고에서는 5분마다 4명이 성폭행을 당하지만 대부분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10~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시 성폭력에 관한 국제회의’를 계기로 전시 성폭력에 다시 관심이 모이고 있다. 100여개국에서 정부·비정부기구를 막론한 인사들이 참여하는 이번 회의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회의다.

전시 성폭행이 ‘전쟁의 도구’라는 인식이 나온 것은 최소 2만명의 성폭행 피해자가 나온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였다.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무슬림 여성이 대규모·조직적으로 구금되고 성폭행당한 흔적이 있다”고 선언했다. 제노사이드(인종학살)가 벌어졌던 1994년 르완다 내전에서는 반정부군이 라디오 방송으로 성폭행을 선동했다. 수치를 느낀 피해 여성들은 낙태·자살을 하기도 했다. 성노예로 고통받다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채 홍등가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생겼다.


내전·분쟁지역의 성폭행은 여전하다. 한달에 평균 1100명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DR콩고에서는 2세 여아부터 80세 할머니까지 성폭행에 노출돼 있다. 생필품 공급도 원활하지 않은 내전·분쟁지역에 피해 여성들의 육체·심리를 치료할 환경은 턱없이 부족하다. 피해자 처벌도 미미하다. 콜롬비아에선 성폭행 혐의자 98%가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50년째 끝나지 않은 콜롬비아 내전 성폭행 피해자는 최대 200만명에 이른다. 범죄조직들의 충돌로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에서는 군까지 나서 토착민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보코하람은 지난 4월 여중생 200여명을 납치해 인신매매하겠다고 협박했다.

국제사회는 전시 성폭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유엔은 ‘유엔 분쟁지역 성폭행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겟 크로스’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전 세계에 전시 성폭행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이다. 주요8개국(G8)은 지난해 4월 전쟁 성범죄 근절에 3500만달러(약 356억원)를 쓰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외교부 차원에서 2012년 전 세계 전시 성폭행 수사 신속 대응팀을 만드는 등 전시 성폭행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전시 성폭행 근절을 위한 행동들이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 성폭행의 조사 및 기록에 대한 국제 규약이 발표될 예정이며, 회의 참가자들은 각국 정부에 성폭행 혐의자 처벌 강화를 촉구하기로 했다. 피해자들도 회의에 참석해 피해를 증언하고 정부에 해결책을 제안하기로 했다. 카비라는 “구호단체만 보유한 치료 시스템을 정부도 꾸려 피해 여성을 치료해야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러나 전시 성폭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이번 회의에서는 전시 성폭행 문제 해결 절차를 만드는 것이 중점”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낙인찍는 문화를 바꾸고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