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가난한 지역에 흑인이 더 많이 몰려산다. 이렇게 백인 중산층 거주지-흑인 빈곤층 거주지로 지역은 점차 분화됐다.
미국 중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퍼거슨은 인구가 2만명 조금 넘는 소도시다. 그러나 8월 들어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곳이 됐다. 8월 9일,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의 총에 맞아 숨진 때부터였다. 경찰이 브라운에게 총을 쐈다는 증언이 이어지며, 브라운 추모 집회에 등장했던 촛불은 어느새 화염병으로 바뀌었다. 경찰이 고무탄에 최루탄까지 써가며 시위대를 진압했고, 퍼거슨은 아수라장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위대에 진정을 촉구했지만, 이미 굳어진 흑백갈등 구도 속에 시위대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8월 16일,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가 나서 퍼거슨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야간 통행금지령도 내려졌다. 17일에는 에릭 홀더 연방 법무장관이 직접 나서 법무부에 브라운 부검을 지시했다. 그리고 18일, 닉슨 주지사는 결국 퍼거슨에 주방위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백인 공권력에 숨진 흑인 청년, 흑인들의 분노와 소요,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주방위군 투입. 퍼거슨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의 죽음이 불러온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연상시킨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투입되면서 53명의 사망자를 냈던 비극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로봇을 닮은 방어구에 경장갑차까지 갖추며 ‘군대화’된 경찰이 있는 상황에서, 주방위군 투입이 사태 진정에 도움이 될지 의문도 제기됐다. 결국 관심은 시위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으로 옮겨졌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8월 15일자로 퍼거슨 소요사태의 원인 분석을 웹사이트에 실었다. 연구소는 퍼거슨에서 흑백 인구 비율이 크게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1980년대만 해도 퍼거슨의 백인 인구 비율은 85%였다. 그러나 점차 흑백 인구 비율이 역전돼 2012년에는 흑인 비율이 67%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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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2000년 지역별 빈곤율(위)과 2008~2012년 지역별 빈곤율(아래). 자료 : 브루킹스 연구소, 미 연방 통계국 |
도시 교외지역 가난한 흑인들 모여 살아
단순히 흑인이 많이 산다는 것이 문제일 리는 없다. 같은 기간에 퍼거슨시에서 일어난 경제적 변화 역시 급격했다. 2000년만 해도 5%에 그쳤던 실업률은 2012년 13%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취업자들이 버는 몫도 줄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퍼거슨 주민들의 실질 가계소득은 3분의 1이 줄었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밝혔다. 빈곤선 이하 가구도 2배로 늘었다. 2000년에는 퍼거슨 가구의 약 25%가 빈곤선(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 당시 4인가구 기준 연소득 2만3492달러·약 2400만원)에 못 미치는 연소득으로 살았다. 그러나 2012년에는 그 비율이 44%에 이르렀다.
2000년 퍼거슨시 내 구역별 빈곤율(특정지역 내 절대빈곤가구 비율)은 4~16%였다. 이것도 2010~2012년엔 13~33.3%까지 늘었다. 주목할 점은 퍼거슨시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전보다 더 커졌다는 점이다. 퍼거슨시가 속한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났다. 퍼거슨이 있는 북동부 지역은 점차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로 바뀌어갔다.
문제는 이 같은 일들이 비단 퍼거슨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 대도시권역 100개를 분석한 결과, 2012년을 기준으로 교외지역 거주자들 중 20% 이상이 빈곤선 이하 가구라고 밝혔다. 이는 2000년에 비해 두 배로 뛴 수치다. 문제는 가난한 공동체가 한데 뭉쳐 있다는 점이다. 교외지역의 빈곤층 인구 38%는 빈곤율이 20%가 넘는 지역에 모여 살고 있었다, 흑인 빈곤층으로 한정하면 그 비율은 53%가 넘는다. 퍼거슨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가난한 지역에 흑인이 더 많이 몰려산다는 뜻이다. 이렇게 백인 중산층 거주지-흑인 빈곤층 거주지로 지역은 점차 분화됐다.
8월 18일 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시위에 참석한 한 남성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퍼거슨/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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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법무장관 설득으로 일단 진정
이는 미국 대도시의 공동화 현상과 그로 인한 인구 이동 때문에 일어났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에 살던 백인들이 더 큰 도시로 떠났고, 그 빈 자리를 다시 흑인들이 메운 것이다. 한때 자동차 도시로 유명했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등도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대표적인 곳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같은 경향이 더욱 심화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백인들이 편견을 갖고 흑인을 대한다는 것도 문제다. 범죄를 막기 위해 투입되는 경찰들은 대부분 백인인데, 흑인들은 그들의 편견으로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퍼거슨의 흑인 인구는 63%인데 비해 불심검문을 당하는 사람들 중 흑인 비율은 86%에 이른다. 브라운의 죽음을 계기로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만약 내가 총에 맞았다면’이라는 캠페인을 보면 그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체로 흑인인 참가자들은 해시태그(#IfTheyGunnedMeDown)를 달고 두 사진을 올려놓는다. 하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불량스러운 모습이고, 또 하나는 정장이나 군복을 입은 채 단정한 사진이다. 언론이 공개한 브라운의 사진이 다소 ‘불량스럽게 비칠 수 있는’ 사진이어서, 그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럴 헌트 UCLA 교수는 온라인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운 그 자체보다는 흑인 청년에 대한 부조리가 만연하다는 인식이 시위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했다.
결국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백인에 대한 반감이 겹치고, 지역 내 인종·계층 간 분화로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져 폭력사태가 일어났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분석했다. 마틴 루터킹 목사가 살던 1960년대 이전처럼 흑인·백인이 같은 버스를 못 타는 일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과 흑인 차별이 아직 남아 있음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8월 20일 잠시나마 시위를 소강상태로 만든 것은 흑인을 모르는 상위계급 백인들도, 경찰특공대와 주방위군도 아니었다. 흑인들을 달랜 흑인 경찰 론 존슨, 그리고 흑인 연방 법무장관 에릭 홀더였다. 존슨은 미주리주 고속도로 순찰대장으로,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연방수사국(FBI)에 브라운 총격 조사를 의뢰한 홀더 법무장관도 20일 퍼거슨에 급파돼 시위대를 설득했다. 홀더 장관은 자신이 장관이기 이전에 흑인임을 강조하면서 “뉴저지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두 차례 받아봤다. 경찰이 트렁크를 들여다보고 운전석 밑을 뒤질 때 그게 얼마나 치욕적이고 화나는 일인지 잘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