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축구의 나라는 더 이상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월드컵 개막을 76일 앞둔 지난 3월 29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안스 경기장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 한 명이 숨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망자는 8m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 부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알도 헤벨로 브라질 체육장관과 제롬 발케 국제축구연맹(FIFA) 사무총장은 연이어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그들의 애도 표현은 처음이 아니었다.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 공사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것은 이번이 일곱 번째였다. 월드컵 개막전과 한국 대 벨기에의 H조 예선 경기가 열릴 코린치안스 경기장에서는 지난해 11월에도 경기장 지붕을 설치하던 기중기가 쓰러져 건설노동자 2명이 숨졌다. 지금까지 코린치안스 경기장에서 4명, 북서부 마나우스의 아마조니아 경기장에서 3명, 수도 브라질리아 마네 가린샤 경기장에서 1명, 총 8명의 노동자가 공사 중에 유명을 달리했다.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이 열릴 상파울루 코린치안스 경기장. 지난해말 완공예정이던 4명의 사망자를 낸 채 경기장은 4월이 되도록 공사 중이다. /리우데자네이루AFP연합뉴스


경기장 건설현장 사망사고는 두 달이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은 경기장 건설을 늦출 수 없다. 개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12개 경기장 중 3곳은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다. 코린치안스 경기장도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로, 이번 사고도 관중석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월드컵 치중하느라 물가 안정 소홀
브라질 설문조사기관 다탸폴라는 3월 24일 월드컵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2091명 중 긍정적인 답을 내놓은 사람들은 46%에 불과했다. 다탸폴라가 2008년 11월에 실시한 설문조사까지만 해도 월드컵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은 79%였다. 올해 2월 조사 결과에서 월드컵을 지지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52%까지 떨어지더니, 결국 국민의 절반이 월드컵을 기대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블룸버그 통신은 “축구의 나라는 더 이상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월드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는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서민들에게 민감한 버스요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 그런데 브라질 정부는 국민들이 처한 문제들보다 월드컵에 더 많은 돈을 쏟고 있다. 경기장 건설비용에만 80억 헤알(약 3조7200억원)이 들었다. 경기장 건설비용이야 원래 높지만, 공사비 예측이 빗나가 지출이 40%나 늘었다는 게 문제다. 지자체들은 기업에서 경기장 프레스센터 건설비용 등을 추가로 대지 않으면 월드컵 개최를 하지 않겠다며 법안 개정을 요구했다. 브라질에 만연하던 교육문제, 빈부격차, 인종차별들까지 국민들의 불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때의 대규모 시위만큼은 아니지만,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됐다. 지난 2월에는 버스요금 인상 때문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가 촬영기자 한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과격시위 외에도 불만들은 다양한 형태로 터져나오고 있다. 대도시에서 인종차별에 불만을 품은 흑인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홀레지뉴’(rolezinho·작은 소동)라는 ‘플래시몹’(flash mob)이 대형 쇼핑몰들에서 벌어졌다. 물가가 초현실적(surreal)으로 올랐다며 올해 1월부터 ‘수르헤알’(surreal) 운동이 페이스북을 통해 시작되기도 했다. 수르헤알은 브라질의 화폐 단위인 헤알(real)이 현실을 뜻하는 영단어 real과 같다는 데서 나온 신조어다. 비싸게 팔리는 물건들의 가격표나 영수증은 페이스북에서 ‘고발’되고, 더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된다. 이런 움직임들은 브라질 언론들을 통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아직도 영수증 사진이 연일 올라오는 데서 보듯, 아직 사회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브라질의 부패와 물가 상승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지난해 6월 20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행진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FP연합뉴스


브라질 당국은 바빠졌다. 우선 국제축구연맹이 월드컵 기간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염려를 거듭 표하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세계경제포럼(WEF) 개막 다음날인 1월 23일 취리히 국제축구연맹 본부를 방문했을 때도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은 경기장의 조속한 건설과 시위문제 해결을 호세프에게 언급했다. 호세프와 블래터는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식에 함께 등장해 관중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았다. 정부와 상인들이 보기에, 시위는 월드컵 기간의 안전뿐 아니라 관광객 유치까지 위협하는 대상이다. 브라질 최대 렌터카 업체인 로칼리자 렌터카의 최고경영자(CEO) 에우게니오 마타르는 “2007년 개최 확정 때만 해도 관광객이 폭발할 줄 알았지만, 시위와 사회 불안이 관광객들을 되돌리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시위 우려해 빈민가에 공권력 투입
브라질은 결국 범죄 진압을 명목으로 공권력 투입을 강화했다. 지난 3월 24일, 호세프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 브라질 연방군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세르히오 카브랄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가 경찰평화유지대(UPP)에 연방군의 합류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UPP는 빈민가에 숨어 마약 밀매 등을 저지르는 범죄조직을 색출하겠다는 취지로 2008년 만들어졌다. 살인율과 총기범죄 발생이 줄어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범죄 예방효과 없이 인권침해만 일으킨다며 비판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30일, 결국 UPP는 연방 해군·해병대 병력과 장갑차까지 동원해 난민촌에 진입했다. 13만명이 사는 빈민촌인 마레지구에서 진입 때문에 발생한 사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이날 마레지구에서는 10대 청소년 패거리들이 충돌을 벌여 15세 소년 한 명이 숨졌다. 한 주민은 “우리 마을을 지배하는 게 범죄조직인지 공권력인지 모르겠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조급한 브라질의 강수는 오는 10월 재선을 노리고 있는 호세프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여전히 재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3월 들어 비리 스캔들까지 터지며 호세프의 지지율은 하락세다. 호세프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을 찾았다. 금융위기가 우려되는 ‘취약(fragile) 5개국’에 그친 브라질에 해외 투자자들을 유치해 경기 부양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좌파성향 중남미 국가들을 주도했다는 데서 브라질이 연초부터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강경 대응 외에는 월드컵 분위기와 관광객들의 물결을 되살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문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촌에 지원 프로그램을 벌이는 활동가 난코 판 뷰렌은 가디언에 “(빈민가에) 군인들이 또다시 들이닥친다면, 월드컵 기간에 다시 시위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