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GMO 종자 특허법안 저지
ㆍ바첼레트 2기 출범 후 단행
칠레 정부가 농작물 종자의 특허권을 농축산부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식물재배법’ 제정을 막았다. 세계 최대 생명과학 회사인 몬산토의 이름을 따 ‘몬산토법’으로 불린 이 법을 막음으로써 칠레 정부는 일단 농업 주권을 지켜냈지만 향후 이 법의 관철을 위한 몬산토 등의 로비가 예상된다.
시메나 린콘 칠레 대통령 비서실장은 칠레 의회가 식물재배법 입법 과정을 철회했다고 17일 밝혔다. 미첼 바첼레트 1기 정권 때인 2009년 하원에 처음 제안됐던 식물재배법의 입법 과정은 바첼레트 2기 정권 출범 일주일 만에 멈추게 됐다.
야당을 비롯한 식물재배법 찬성 측에선 “바첼레트가 앞서 추진한 법을 뒤집었다”며 비판했다. 로날드 브라운 칠레청과물수출업자협회장은 “식물재배법이 없으면 칠레가 국제 청과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일간 산티아고타임스에 말했다.
그러나 원주민들과 중소규모 농민들, 유전자조작농산물(GMO)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몬산토 같은 초국적 농산품 복합기업이 특허권을 구매해 비싸게 되파는 등 식물재배법이 악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 인권변호사 아리엘 레온은 식물재배법에 대해 “수백·수천년간 전통적 방식으로 경작돼온 작물들도 특허권료를 내고 길러야 할 위험이 있다”고 칠레 지역언론에 설명했다. 법에는 ‘새로 개발한 작물’로 특허권 부여 대상이 명시됐지만, 몬산토 등이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대규모 로비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칠레가 몬산토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지만, 몬산토는 이미 전 세계 농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대표적 대규모 농업국인 아르헨티나에선 1996년부터 몬산토가 개발한 유전자조작 콩이 공급됐다. 당시 5만6700㎢이던 유전자조작 콩 재배면적은 2008년엔 3배로 늘어난 17만㎢였다.
그러나 점차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작물들 주변엔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잡초’가 자랐다. 대형 농장에 뿌려진 제초제는 배로 늘어 주변 소규모 농가로 흘러들었다. 가축이 죽고 농사를 망쳐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 농민 15만명이 농촌을 떠났다. 유전자조작 콩 재배만 늘어 작물 다양성은 줄었다.
인도에서는 몬산토가 개발한 유전자조작 면화(Bt 면화) 때문에 지난 10여년에 걸쳐 농부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Bt 면화의 생산성은 기대에 못 미쳤는데, 종자가격은 폭등했다.
인도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유전자조작 면화 도입 전 ㎏당 7루피(약 123원) 수준이던 면화종자 가격이 2009년엔 1만7000루피(약 29만8000원)까지 올랐다”고 허핑턴포스트에 썼다. 농민들의 부채상환 부담은 심해졌고, 이 때문에 숨진 농부들이 2008년까지 20만명에 이르렀다.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까닭에 몬산토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해 5월25일에는 서울, 칠레 산티아고를 포함해 52개국 436개 도시에서 몬산토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몬산토의 움직임이 멈출지는 의문이다. 2005년 이래 몬산토가 농산물 시장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는 칠레는 이번 몬산토법 입법 철회에도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붙였다. 몬산토는 “몬산토법이 우리 회사와 직접적인 영향이 없음을 밝히고 싶다”고 산티아고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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