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1376호


원유가 좋다지만 투자 위험경보

ㆍ“값이 쌀 때 사자”며 파생금융상품 ETN과 ETF 매입한 투자자 속앓이

언젠가 오를 상품이라면 ‘값이 쌀 때’가 ‘사기 좋을 때’다. ‘동학개미운동’으로 통용되는 개인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수 행렬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리 나라가 망해도 국내 최고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망하겠느냐’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다. 이 믿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다가 장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했던 과거 사례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원유 관련 상품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원유 관련 상품들에 관심이 쏟아지고 투자금도 몰려들었다. 원유도 과거 폭락했다가 반등했던 전례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자존심 싸움, 그리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전 세계 이동 감소 탓에 전례 없이 유가가 떨어졌다지만 국가 간 갈등이 봉합되면 다시 오르리라는 기대는 있다.

그러나 원유와 관련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웃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가가 주가지수처럼 뚜렷하게 반등하고 있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원유 거래의 특성과 상장지수증권(ETN)·상장지수펀드(ETF) 등 원유 관련 파생금융상품의 특성은 ‘사놓고 기다리면 언젠가 오르는’ 우량주 주식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살 때와 팔 때 가격이 다르다

ETN과 ETF는 대개 유가지수의 오르내림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이다. 증권이냐 펀드냐의 차이는 있지만 원유 가격에 따라 수익을 얻는다는 점은 같다. ‘인버스’ 상품은 유가가 떨어지면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레버리지’ 상품은 유가 변동폭의 배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레버리지 인버스’ 상품도 있다. 단순 가정했을 때 유가가 10% 떨어지면 수익률 20%를 기대해볼 수 있다.

4월 27일, 한국거래소는 ‘레버리지 원유 ETN’ 4종에 대한 거래정지 조치를 내렸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레버리지 원유 ETN 4종이 모두 거래가 정지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월 23·24일에도 4종 거래가 모두 정지됐고, 27일 재개됐으나 거래는 하루에 그쳤다.

‘괴리율’이 문제였다. 괴리율은 ETN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ETN이 추종하는 유가지수를 적용한 ‘지표가치’와의 차이를 뜻한다. 유가가 올라 투자수익을 낼 수 있다면, 투자자들은 지표가치보다 더 많은 값을 치르고 ETN을 살 수도 있다.

평소 ETN의 괴리율은 6% 이내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ETN을 발행한 증권사도 해당 상품 일부를 갖고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했다. 시장 거래가격, 즉 호가가 너무 낮으면 거래되는 ETN 물량을 사들이고, 높으면 물량을 풀었다. 이런 구조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작동됐다. 금융투자업계의 고민이 ‘ETN 활성화’였을 정도로 거래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유 ETN에, 그것도 가격 상승분의 2배를 수익으로 볼 수 있는 레버리지 ETN에 투자자가 몰리면서 생겼다. 시장에 거래되는 물량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증권사가 갖고 있는 물량만으로는 시장가격을 조절할 수 없었다. 시장가격은 치솟았고, 괴리율은 급등했다. 4월 22일에는 신한금융투자의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 괴리율이 장중 1000%를 넘겼다. 거래소가 4월 24일부터 괴리율이 30%를 넘을 때 ‘3거래일간 거래정지’를 결정하는 걸 감안하면 비정상적인 수치다. 증권사들은 겨우 금융당국에 LP 역할을 위한 추가 ETN 물량 발행을 승인받았으나 가격을 조절하기는 역부족이다.

괴리율이 문제가 되는 건, 결국 투자자가 상품을 상환할 때 기준이 되는 건 ‘거래가격’이 아닌 ‘지표가치’이기 때문이다. 유가지수에 비해 비싸게 사들여봐야 되팔 때는 유가지수에 준해서 값을 받는다.

선물 만기가 지나면 비용이 생긴다

그렇다면 유가가 오를 때까지 ‘장기전’을 펴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원유 ETN과 ETF에는 ‘롤오버’가 있기 때문이다. 원유는 보통 거래시장에서 선물(先物) 형태로 거래되며, 원유 ETN과 ETF가 추종하는 것은 원유 선물가격지수다.

원유 선물은 매월 만기가 있다. 만기가 끝나면 원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석유’ 형태로 거래된다. ETN과 ETF의 경우, 추종 대상 원유 선물을 ‘곧 만기가 끝나는 선물(최근월물)’의 비중을 줄이고 ‘그다음으로 만기가 끝나는 선물(차근월물)’ 비중을 늘려간다. 이를 ‘롤오버’라고 한다.

보통 최근월물보다 차근월물이 비싸다. 저장을 최소 한 달 더 해야 하고, 그사이 벌어질 수 있는 변수 등을 고려해서다. 그래서 최근월물을 차근월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만큼 ETN·ETF 투자자는 손해를 본다. 문제는 현재 원유가가 유례없이 싸고 앞으로 원유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크다는 데 있다. 가격 상승 기대가 큰 만큼 롤오버 비용이 커지고, 롤오버 때 투자자가 얻는 손해도 커진다. 이 롤오버가 보통 매월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주식과 달리 오래 버티는 게 장점이 될 수 없다.

유가의 변동성이 극심해진 최근 롤오버는 수시로 일어나는 게 문제다. 4월 23일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 WTI 원유 선물펀드’는 자산 구성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6월물 비중을 줄이고 7·8·9월물을 새로 편입했다. 투자자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23일 해당 상품은 분산투자를 하면서 가격이 4.29% 올랐는데,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날 거래된 WTI 6월 인도분 가격 상승폭(19.1%)에 못 미쳐 수익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4월 28일에는 증권사가 아니라 ETN이 추종하는 미국의 기초지수 산출기관에서 롤오버를 단행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가 기초지수 산출기준을 ‘6월물’(6월 만기 선물)에서 ‘7월물’로 바꿨다.

이렇듯 원유 ETN과 ETF는 장기간 투자하기 적합한 상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단기간에 이득을 보겠다는 투자자들까지 겹쳐 ETN과 ETF의 거래 규모는 최근 줄어들 줄을 모른다. 거래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일부 원유 ETN에 대해 ‘위험’ 등급 소비자경보를 발령한 다음날인 4월 10일부터 24일까지 개인 투자자는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ETN·ETF를 총 1조364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반면 레버리지 원유 ETN 4종의 시가총액 합은 27일 하루에만 4345억원에서 2800억원으로 35.56% 급감했다. 시총이 감소한 만큼 투자자가 직접 손해를 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변동성 및 손실 위험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원유 투자를 향한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4월 28일, 레버리지가 없는 ‘신한 브렌트원유 선물 ETN’도 괴리율이 31.1%에 이르러 거래가 정지됐다. 이 상품은 레버리지 원유 ETN 거래가 정지된 4월 23일, 거래대금이 전날(22억6400만원)의 2배인 47억4300만원에 달했고, 다음날에는 113억500만원에 이르는 등 투자자의 쏠림이 심했다. 여기에 유가까지 널을 뛰면서 괴리율도 높아지고 거래정지까지 다다른 것이다. 투자자들의 쏠림이 계속된다면 이런 현상은 당분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원유도 언젠가 오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관련 상품에 이미 손을 댄 개인 투자자들의 속앓이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