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때문에 시위와 충돌이 벌어졌다. 아직도 세르비아계-알바니아계 주민들이 갈등하는 코소보에서다.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카에서 22일 알바니아인 수백명이 다리를 가로막은 꽃밭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시위대는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충돌로 경찰 13명과 주민 10명이 다쳤다고 지역 경찰 대변인이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다리 한 쪽에 세워진 꽃밭이었다. 미트로비카에는 이바르강이 흐르고 있고, 강을 경계로 북부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남부엔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살고 있다. 강 위에 놓인 한 다리의 북쪽에는 2011년부터 콘크리트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 경찰의 마을 지휘를 막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알바니아인들이 92%인 코소보는 2008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는 아직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 코소보 영토에 있는 세르비아인들도 마찬가지다. 바리케이드는 알바니아인들과 코소보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세르비아인들의 의사였다.
유럽연합(EU)는 지난해부터 종족 갈등을 해소하고 코소보를 통합하려 지난해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의 회담을 주선했다. 그리고 18일 북부 세르비아계 마을에서 바리케이드를 허물며 노력이 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바리케이드 대신 꽃밭이 들어섰다. 세르비아인 마을에선 이 꽃밭이 ‘평화 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꽃밭은 차량과 인명의 왕래를 막은 또 다른 바리케이드였다. 세르비아인들과의 통합을 눈 앞에 뒀다고 생각했던 코소보 당국과 알바니아인들의 기대가 무너졌다.
알바니아인 민족주의자 수백명은 이에 반발해 22일 다리를 건너려고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코소보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병력들도 시위 진압에 나섰다고 BBC 등은 전했다. 코소보 사태 때 개입했던 나토군은 현재 코소보에 약 5000명이 남아있다. 1998년 코소보가 유고연방에서 독립하겠다고 요구하자, 유고연방이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해 코소보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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