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주택 수급 불균형 + 저금리 + 규제완화…폭등 부채질

올해와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평년의 절반 수준
기준금리 인하로 집주인이 전세 회피, 월세 전환 급증
고삐 풀린 재개발·재건축에 이주수요도 늘어 ‘아우성’


최근 사상 최악의 전·월세난은 기본적으로 신규 주택 공급물량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지만 정부와 통화당국의 정책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렸지만 경기 진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전셋값만 오르며 경제의 주름살을 깊게 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으로 재건축·재개발 추진에 탄력이 붙으며 이주 수요가 급증한 것도 전셋값 상승으로 귀결됐다.

지난해 9월 위례신도시의 한 견본주택 전시장이 분양상담을 받으려는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이었고, 이 여파로 전·월세 가격이 급등했다. 연합뉴스


23일 부동산114의 분석을 보면 올해와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1023가구와 2만1635가구로 평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3년 7만8707가구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012년(1만9213가구)을 제외하고는 3만~4만가구대를 유지해 왔다. 올해와 내년 입주가 적어진 것은 2년 전인 2013~2014년 집값 하락으로 건설사들이 신규 분양을 줄였기 때문이다. 보통 2년 정도 걸리는 아파트 건설기간을 감안하면 2년 전의 분양 감소가 지금의 주택 공급 부족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올해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서울에서만 4만8000여가구가 분양됐지만 이 집들은 2년 뒤인 2017년부터나 입주가 가능하다.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전세 들어갈 집도 모자라 전셋값이 오르게 된 것이다.

한은의 초저금리 정책도 전·월세난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연 3.25%였던 기준금리는 2012년 7월부터 하락행진을 시작해 올 6월 사상 최저치인 연 1.5%까지 떨어졌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명분은 경기활성화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는 저금리 때문에 집주인들이 전세를 회피하고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며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지난 8월 전국의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 비중은 45.6%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5%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지난해 1월(46.7%)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세입자들은 주거비 부담이 적은 전세를 원하지만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미스매치’ 현상이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월셋값 상승은 가계부채 증가를 키우는 부작용도 낳는다. 턱없이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받거나 아예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가계의 소비여력을 줄여 경기활성화에 악재가 된다. 경기 악화→금리 인하→전·월셋값 상승→가계부채 증가·소비 위축→경기 악화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경기부양을 위해 한은이 금리를 내리고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서민·중산층의 주거비 상승이라는 부담만 키워놓은 셈이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고삐 풀린 재건축·재개발도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다. 올 9월부터 내년 말까지 서울에서 재건축·재개발로 인한 이주 수요는 6만1970가구에 달한다. 그러나 같은 기간 입주 가능한 아파트 물량은 3만1471가구에 불과하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재건축·재개발 이주기간은 보통 3~4개월로 짧은 편”이라며 “단기간에 1000가구 이상이 이주하면 인접 지역의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준기 기자 jkkim@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