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고삐 풀린 전셋값 실태
ㆍ서울 아파트 65주간 상승…절반 이상 오른 단지만 17개
ㆍ전세가율 70% 넘은 단지 많아 ‘깡통전세’ 위험도 가중
ㆍ전세 1% 오를 때 가계소비 0.3% 줄어…경제에 악영향
#서울 마포구 공덕동 84㎡ 아파트에 보증금 3억5000만원의 전세로 살고 있는 ㄱ씨(48)는 얼마 전 재계약을 하면서 집주인으로부터 최근 시세에 맞춰 전세보증금을 1억원 올리지 않는 대신 월세 50만원을 내라는 요구를 들었다. 아이들 학교 때문에 이사를 할 수 없는 ㄱ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의 요구대로 반전세로 전환했다. ㄱ씨는 “월세는 식료품비와 의류구입비 등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서 충당하고 그마저 안될 때는 아이들 학원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결혼한 직장인 ㄴ씨(33)는 지난 6월부터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지만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는 마땅한 소형 아파트 전세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인근 경기 광명시로 발길을 돌린 ㄴ씨가 철산동에서 56.2㎡형 아파트 전셋집을 발견해 찾아가니 집주인이 당초 내놓았던 전세금에 500만원을 더 붙였다. ㄴ씨는 지난 7월 1억9500만원에 계약을 하고 최근에 입주를 했는데 이후 전세 시세는 2억1000만원으로 더 올랐다. 입주 후 ㄴ씨가 찢어진 방충망과 고장 난 현관 센서, 인터폰 등을 고쳐 달라고 집주인에게 요구하자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덜 받았는데 그런 것까지 해줘야 하느냐”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서울 지역의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해 6월 이후 65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114가 최근 2년간 서울 아파트 단지의 전세가격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신반포한신23차의 전세가격이 66.7%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의 실거래가 내역을 보면 전용면적 56~57㎡로 소형인 이 아파트는 올 3월 이후에만 전세가격이 6000만원 올라 현재 시세가 2억9000만원에서 3억3000만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서울에서만 2년 동안 전세가격이 50% 이상 오른 아파트 단지가 이 아파트를 비롯해 17개나 된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도 크게 오르고 있다. 전세가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집값이 급락하거나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깡통 전세’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KB국민은행의 집계를 보면 서울 지역의 전세가율은 지난 8월 현재 70.9%로 1년 전(64.4%)에 비해 6.5%포인트 높아졌다. 통상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서면 깡통전세 위험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전세가격이 집값보다 비싼 아파트들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성북구 종암동 삼성래미안 59㎡형(3층)은 3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는데 같은 달 거래된 같은 면적, 같은 층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500만원이 싼 3억4500만원이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전·월세 가격 등 주거비가 급등하면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전세와 월세가격이 각각 1%씩 상승하면 가계소비는 각각 0.30%, 0.12%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중 소비에 얼마나 쓰는가를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이 올 2분기 71.6%로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2분기 기준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월세 등이 포함된 가구의 주거비는 월 평균 7만3900원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셋값 상승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주거비 부담으로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늦추면서 한국 사회의 인구재생산 구조가 붕괴되는 등 경제·사회 전반에 타격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김준기 기자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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