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덴마크 코펜하겐서 발생

ㆍ2만여명 탄원 불구 강행

ㆍ어린이 앞에서 ‘도살’ 논란

9일 오전 덴마크의 코펜하겐 동물원. 기린 한 마리가 바닥에 길게 누워 있다. 기린 주변엔 흰 가운을 입은 채 칼을 든 동물원 직원들이 서 있고, 어린이를 비롯한 관람객들은 동물원 직원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아이들의 눈앞에서 기린의 가죽이 벗겨졌다. 빨간 속살이 드러난 기린의 사체는 토막났다. 토막은 사자 우리로 던져졌고, 기린을 물어뜯는 사자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동물원 측이 근친교배를 막겠다는 이유로 기린을 도살한 현장을 담은 것이다. ‘마리우스’라는 이름의 두 살배기 기린이 이날 오전 9시쯤 가축 도살용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고 덴마크 현지 일간 베테 등 외신들이 전했다. 동물원 측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 목적’으로 마리우스 검시 및 도살 장면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에 소속된 동물원들은 암컷 한 무리에 수컷 한 마리로 기린 번식집단 하나를 짠다. 암컷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나 근친교배를 막고 개체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명목에서다. 마리우스처럼 다른 기린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점이 없는 18~24개월 된 수컷 기린들은 보통 번식집단에서 제외된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마리우스가 도살될 것이라는 소식이 지난 8일 BBC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기린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기린 마리우스를 도살용 총으로부터 살려내자’는 인터넷 탄원 페이지가 열렸고, 2만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탄원에 동참했다. 도살 당일에도 ‘마리우스를 살리자’는 내용의 현수막이 동물원 주변에 나붙었지만 동물원 측은 도살을 강행했다. 

동물원 측은 “마리우스가 살 곳을 찾지 못했다.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물원 측의 주장과 달리 마리우스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여럿 있었다. 실제 영국의 요크셔 야생동물원은 “코펜하겐 동물원 측에 마리우스를 인수하겠다고 밝혔으나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50만유로(약 7억3000만원)에 마리우스를 데려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동물원 측이 마리우스의 사체를 처음부터 사자 먹이로 주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거세졌다. 마리우스를 도살하는 데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수백㎏에 이르는 고기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마리우스 도살의 정당성과 이후 과정에 대해 비판했다. 덴마크 동물피해반대기구의 스타인 젠슨은 “대안을 찾지 않은 동물원에 도덕적 관념이 결여됐다”고 BBC에 말했다. 

스웨덴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의 권리’는 “동물원이 흥미로운 유전자가 없거나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살하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코펜하겐 동물원의 과학 담당자인 벵트 홀스트는 “장기적으로 봐서는 좋은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기린들에게 좋다”며 “우리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