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20세기 흑사병’ 에이즈와 같고도 다른 확산 양상
9일 미국 워싱턴 세계은행 본부에서는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열렸다. 세계 경제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지만 올해 총회에서는 에볼라 대책회의도 함께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공공보건 분야에서 30여년간 근무하며 에이즈 외엔 이 같은(에볼라)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우리는 에볼라가 제2의 에이즈가 되지 않도록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까지 집계된 전 세계 에볼라 감염자 수는 이미 8000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서아프리카에서만 보고되던 감염·사망 사례는 다른 대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8일 미국 내 첫 감염 확진자 토마스 던컨이 사망하면서 에볼라 공포는 미주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프리든 소장의 언급처럼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렸던 에이즈처럼 에볼라가 ‘21세기의 흑사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1980년대 전후해 아프리카서 발견
빈곤과 열악한 환경 동일한 확산 주범
▲ 사회현상된 에이즈, 치료제 개발 빨랐지만
에볼라는 서방 감염 후 치료제 개발 가속화
에볼라와 에이즈는 모두 1980년대 들어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는 점도 같다. 치사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더 많은 숙주에 옮아갈 수 있도록 바이러스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치사율이 90%대에 이르렀던 에볼라도 올해 치사율이 50%대까지 떨어졌다.
에이즈는 이제 미국과 유럽에서 만성질환이 됐다. 1985년 할리우드 배우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숨진 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치료제 개발도 가속화됐다. 이제 환자들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여전히 심각한 질병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 중 70%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나왔다. 이들 지역은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고 구입할 형편이 못된다. 기본적인 공중보건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고, 환자들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지식 부족, 무분별한 성생활 등도 에이즈를 퍼뜨리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에이즈는 여전히 최악의 질병으로 꼽힌다. 경제적 빈곤과 공중보건 문제는 에볼라를 확산시킨 주범이기도 했다.
두 질병 뒤에는 사회·경제적 의미가 숨어 있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이 빨랐던 것은, 에이즈 유행이 ‘사회 현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흑인·동성애자가 걸리는 질병’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금기시되던 에이즈 감염 사실을 허드슨이 알린 덕에,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에볼라는 서방 국가에서 감염 사례가 나온 뒤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빈곤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치료제를 살 형편이 못되기 때문에, 서방 제약회사들이 에볼라 치료제 개발을 늦췄다는 비난도 나왔다. 에볼라는 서아프리카 지역 경제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에볼라 대응이 더디다”고 우려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에볼라는 에이즈가 확산됐을 때보다 더 유행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1980년대와 달리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내 첫 에볼라 사망자였던 던컨은 미국을 방문한 라이베리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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