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아시아인의 눈과 귀가 2주 동안 인도네시아로 쏠렸다. 경향신문·스포츠경향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취재팀도 개최지인 자카르타와 팔렘방, 주변 도시들을 부지런히 누볐다. 지난 2일 폐막한 아시안게임을 되짚어보며 그동안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용균 차장(이하 균)=이번 대회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경기를 하나씩 말해볼까요.
윤은용(이하 용)=역시 남자축구 한·일전 결승이죠. 그 중에서도 황희찬이 추가골을 넣고 산책 세리머니를 하는 사이, 손흥민이 김학범 감독에게 다가가 서로 강하게 포옹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대회에서 가장 부담이 컸을 두 사람이 그렇게 포옹하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살짝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인터뷰하는 손흥민을 지나치는 김학범 감독이 장난스레 손흥민을 툭 치는데 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윤승민(이하 민)=팔렘방까지 가서 본 카누 드래곤보트(용선) 단일팀의 금메달이 기억에 남습니다. 단일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어쨌든 ‘단일팀 사상 첫 국제 종합대회 금메달’이라는, 역사에 남을 기록을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남자 1000m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을까 짐작은 했는데, 하루 앞선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이 나오다니… 속된 말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졌’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균=전 김도윤·최경선 선수가 뛴 여자 마라톤이 가장 뭉클했어요. 아침 6시에 경기를 시작하니까 전날 저녁 7시쯤 잤고, 새벽 2시에 아침을 먹었대요. 공기 상태가 좋지 않은 자카르타 시내를 달려 메달에서 조금 모자란 4위와 6위를 했습니다. 그 와중에 두 선수 모두 도핑 검사 대상자로 지목됐어요. 몸에 수분이 안 남아있는 상태에서 2시간이나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 그랬는데도 믹스트존에서 울먹이더라구요. 메달이 뭐길래. 충분히 자랑스러운 경기를 했는데…
이정호(이하 호)=황희찬 말고 다들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군가요. 제게는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태권도 품새 남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강민성 선수입니다. 대회 직전에 만난 강민성 선수의 다부진 표정과 강렬한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도복을 사기도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수없이 국가대표 선발전 좌절한 시간을 이겨낸 금메달이라 가슴 찡한 순간이어요.
균=유도 여자 48㎏급 정보경 선수도 짠했어요. 곤도 아미(일본)와의 결승전 연장 때 팔 가로누워 꺾기, 그러니까 암바에 걸렸거든요. 이제 끝났다 싶었는데 그걸 정보경 선수가 참고 버텼어요. 저절로 몸서리가 처질 정도의 장면이었죠. 금메달 따고 웃었는데, 시상식을 기다리는 동안 왼쪽 팔에 얼음찜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봤어요. ‘견딘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민=저는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 97㎏급 조효철 선수요. 국내 정상급 선수였지만 대표 선발전마다 고배를 마셨는데,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며 나갔다는 이야기가 뭉클하더라구요. 사실 유력한 금메달 후보는 아니었는데, 눈가가 찢어졌는데도 붕대를 칭칭 감고 경기를 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힘들게 우승한 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제 딸은 저 안 닮아서 귀여워요”라고 농담을 건네는 여유를 보면서는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균=가족 얘기하니 체조 여서정과 북한의 역도 선수 오강철 얘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어쩌다 보니 제 주특기가 종합대회 믹스트존에서 질문으로 선수 울리기가 돼 버렸는데, 이번 대회에서도 유명한 눈물 2개가 제 질문에서 나왔네요. 오강철에게 “시상식 때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오강철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울음을 쏟아냈고, 여서정에게는 “중계 때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셨다고 해요. 아버지께 해 드릴 얘기 있나요”고 물었는데, 여서정이 울먹이면서 “아시안게임에서 땄으니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 걸어드릴게요”라고 답했어요. 이번 대회 대표팀 가장 감동적인 선수 소감이 아닐까 싶네요.
호=색다른 체험도 했습니다. 한국과 이란이 맞붙은 남자 카바디 결승전 취재를 갔어요. 경기 자체는 너무 생소했지만 경기장 분위기가 역동적이라 시선을 끌더라구요. 그런데 선수들은 술래잡기, 오징어같은 애들 놀이로 카바디가 소개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더라구요. 실제로도 그런 놀이와는 차원이 다르죠. 인도리그 스타인 이장군 선수는 럭비 선수같은 몸을 자랑합니다. 선수들은 “카바디가 진짜 스포츠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더라구요.
균=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는 수영장에서 나왔어요. 남자 자유형 400m 결승. 쑨양(중국)이 4레인에 섰는데, 중국 팬들의 응원소리가 엄청나게 컸어요. 쑨양이 준비 자세를 풀더니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보였어요. 마치 ‘쉿’ 하는 것처럼. 그러자 정말 수영장이 고요해지더라구요. 예전에는 약간 치기 어린 선수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월드 클래스’가 됐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용=축구 취재를 전담하느라 많은 종목을 접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예선과 토너먼트가 열리는 많은 도시를 다니며 여러 경험을 했습니다. 비행기로 3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연착이 돼서 4시간이나 지연이 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것은 시작에 불과하죠. 반둥에서는 경기장이 워낙 외딴 곳에 있어서 취재 후 숙소로 돌아올 때 택시 잡으려고 3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어요. 8강전이 열린 브카시는 그야말로 모기들의 천국이었어요.
민=전 용선 단일팀 취재차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현지 패스트푸드 브랜드 햄버거와 음료수를 한 잔 마셨는데, 다음날 자카르타에서 속이 좋지 않아 물과 커피만 마시며 하루를 지냈어요 야구 대표팀도 장염 때문에 고생했다는데, 듣자 하니 선수들에게 ‘현지 얼음을 먹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 위생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면서요. 그래서 현지를 찾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건네 준 음료수를 선수들이 마시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호=저는 심한 열감기가 걸려서 힘들었던 출장이었습니다. 처음엔 냉방병인 줄 알고 더운 날씨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녔는데요.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 전혀 듣지를 않아 3일간 고열과 싸워야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본 증세가 말라리아랑 비슷해서 걱정을 했는데, 4일째 소개받은 한인 병원에서 현지 열감기라고 하길래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주사와 약을 처방받았는데 금액이 ‘1486000’루피아, ‘0’이 너무 많아서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돈인 10만루피아 지폐를 꺼냈다가 다시 금액을 확인하고는 머쓱해져서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물가가 싼 인도네시아지만 병원비는 만만치 않더라구요.
균=다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비록 이번 대회 한국이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대회였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8일 열린 대표팀 결단식이 생각나네요. 이낙연 국무총리의 격려 인사가 예전과 달랐어요. “포기하지 않고 견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시는 것만으로도 장하십니다”,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을 견디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라고 했거든요. 이 총리의 말대로 이제 더 이상 ‘금메달에 열광하던 때’는 아니라는게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증명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야구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이 조금 아쉬워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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