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정근우. 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정근우. 한화 이글스 제공

정근우(36·한화)는 올 시즌 8번을 제외한 전 타순에 들어섰다. 예년처럼 1번에서 90타석, 2번에서 84타석 들어서는 등 가장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6번에서도 43타석에 들어서는 등 다른 타순에 출장하는 비중도 늘었다.

여기에 주 포지션인 2루수 외에 좌익수·1루수 등 새로운 자리에도 도전하고 있다. 데뷔 시즌에 주로 섰던 중견수 자리에 이따금씩 기용된 적도 있지만, 좌익수-1루수 등 그간 소화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자리에도 출전하고 있다. 1~2이닝 백업이 아닌 선발이다. 그간 팀 미트를 빌려 1루 수비에 나서다가 최근에는 개인 전용 1루수 미트도 새로 마련했다.

베테랑의 이런 변신은 그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녹록지 않은 팀 타선 상황 탓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한화는 김태균, 송광민, 양성우 등 팀의 중심타자들이 빠져 있다. 그 자리를 백창수, 강경학 등 백업을 오래 하던 선수들로 채워야 했다. 공격력이 일취월장한 강경학에 수비가 빼어난 정은원 등 2루 자원도 많아진 탓에, 정근우에겐 다양한 타순과 비어 있는 포지션을 메울 역할이 주어졌다.

지난 8일 잠실 두산전에서 정근우는 3번·지명타자로 출장했다. 그가 ‘안 들어서본 타순’은 없다고 했지만, 정근우는 경기 전 자신의 타순을 듣고 조금 부담은 됐다고 했다. 그러나 ‘배트 중심에만 맞추고, 출루하자’는 마음을 먹으며 시작한 경기에서, 정근우는 2루타 1개 포함, 3개의 안타를 치고 2타점을 올렸다. 팀이 4-2로 근소하게 앞선 4회초에는 점수 차를 벌리는 적시타를 쳐 승부의 추를 한화쪽으로 가져왔다. 마지막 9회초 2사 후 볼넷을 골라낸 덕에 4번 제라드 호잉의 쐐기 투런포도 이끌어냈다.

정근우에게 잦은 포지션 변경에 대해 물으니 “부담이 안된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오늘처럼 지명타자로 나섰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했다.

“왠만해선 초구를 안 치려고 해요. 수비를 오래하다 더그아웃에 들어온 선수들에게 좀 더 쉴 시간을 줘야하기 때문에요.”

타석에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좋은 결과만 생각한 게 아니라, 타석에서의 승부가 동료들에 미치는 영향까지 머릿 속에 계산하고 있던 것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정근우는 ‘경쟁자’ 강경학에게도 격려의 메시지를 건넸다. 강경학이 올 시즌 중반 합류해 3할이 넘는 타율로 상위 타선에 자리잡으면서, 한화는 유격수 하주석-2루수 강경학으로 고정하고 정근우의 수비 위치에 변화를 주게 됐다. 하지만 정근우는 강경학을 향해 “많은 경기를 연속해서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텐데도 잘 해주고 있다”며 “앞으로 몸관리를 잘 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