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5분 이상 휴식 규정은 시늉뿐”…기사들 ‘졸음과의 전쟁’
ㆍ휴게실 환경도 열악…30분 만에 주유·점검·식사 마쳐야
ㆍ광역버스 노동환경 주목받지만 “시내버스는 아오지 수준”
이정수씨(37)가 모는 경기 안양 시내버스 11-3번은 만안·동안구에서 과천시~서울 서초·강남구 도로를 달려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회차한다. 이씨 회사의 시내버스 중 운행거리가 가장 길고 출발시간도 가장 이르다.
지난 1일 오전 4시55분쯤 차고지를 나선 지 10분도 안돼 버스 좌석이 꽉 찼다. 정적 속에서 이씨는 차가 1분 남짓 신호에 대기할 때마다 핸들 쪽으로 몸을 숙이거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졸음을 쫓았다.
출발 2시간30분 만에 차고지로 돌아온 이씨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은 단 5분. 화장실을 다녀오는 데 시간을 다 썼다. 현행법상 한 차례 운행을 마친 시내버스 기사는 10분 이상, 시외버스 기사는 15분 이상 쉬어야 한다. 시내버스도 2시간 이상 운행하면 15분 이상을 쉬어야 한다. 이씨는 “이번에 운행을 나갔다 돌아오면 25~30분 정도 휴게시간을 줄 것”이라며 “이미 첫차 운행으로 지칠 대로 지쳤는데 휴게시간 몰아서 주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다른 운수업체 광역급행버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기 외곽 신도시와 서울 도심을 오가는 광역급행버스를 운전하는 ㄱ씨는 같은 날 오전 6시부터 버스를 몰았다.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기에 ㄱ씨는 버스가 서울 도심 회차 지점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겨우 몸을 폈다.
운행을 마친 ㄱ씨는 차내 유실물을 점검하고 입구를 공기분사기로 청소했다. 차고지 휴게실에서 14분을 쉰 뒤 다음 운행에 들어갔다. ㄱ씨는 “그나마 휴가철이라 출근시간대 이 정도 쉬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라고 했다.
버스 기사들이 잠시 들른 휴게실 환경도 열악해 보였다. ㄱ씨 회사의 6.6㎡ 남짓 되는 휴게실엔 근무일정표가 놓인 책상 1개, 의자 3개, 커피머신 1개, 그리고 성인 8명이 누울 만한 평상과 목침 3개가 전부였다. 10㎡가 조금 넘는 이씨 차고지 휴게실에는 소파가 여럿 있었지만 성인이 누울 수 있는 긴 소파는 2개뿐이었다.
해가 제법 솟은 시간대의 두 번째 운행 때도 두 기사는 피로를 쫓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씨는 ‘졸음방지 껌’을 항상 갖고 다닌다. 이씨는 “동료 중 생마늘, 생양파 먹는 사람도 있다”면서 “허벅지를 꼬집기도 한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 졸음운전으로 작은 사고를 낸 적이 있다. ㄱ씨는 “안전운전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화통화를 해야 잠이 잘 깬다”고 했다.
두 번째 운행 이후 이씨와 ㄱ씨에게는 30~40분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첫 운행보다 시간이 늘었지만 주어진 시간에 가스 충전, 주유, 차량 점검, 점심 식사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가스가 떨어져 차고지 내 충전소에 들른 ㄱ씨는 먼저 충전 중인 버스가 충전을 마치길 기다리는 데만 8분을 썼다.
이씨는 직접 주유를 마치고는 10분 만에 점심 식사를 끝냈다. 이씨 입에서 “5분 남았네” 같은 말이 이따금 새어 나왔다. 이씨는 “신호를 위반하고 앞차랑 밀착해서 빨리 운행하면 그만큼 쉬는 시간이 확보된다”며 “그러면 승객들도 위험할 뿐 아니라 뒤차 기사들도 배차 간격을 늘릴 수 없어 서둘러 운행해야 하고, 쉬는 시간은 줄어들게 돼 다른 기사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경기도 내 두 도시를 오가는 또 다른 광역순환버스를 탔다. 그러나 수도권 교통량이 적은 휴가철인데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교통체증에 막혀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늘어진 차량 행렬에 버스 기사 ㄴ씨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외곽순환도로는 우회로가 마땅치 않아 사고가 바로 교통체증으로 이어진다”며 “광역급행·시내버스는 손님이 없으면 잠깐 차를 대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지만 순환버스는 허리 한번 펼 짬도 안 난다”고 말했다.
그나마 ㄱ씨가 모는 광역버스 회사 측은 지난달 9일 경부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 이후 “2시간 이상 운행 후 15분 휴식을 지키라”는 지시를 기사들에게 내렸다. 그러나 ㄱ씨는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니 부랴부랴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내버스 기사들의 근무환경은 광역버스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악하다고 한다. ㄱ씨는 “광역버스 기사들도 시내버스는 ‘아오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주요 도시와 서울을 오가는 시내버스 노선은 주행거리가 광역버스와 비슷하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도로를 운행하기 때문에 난도가 더 높다. 또 시내버스는 광역버스보다 좌석 수가 적고 서서 타는 사람이 많아 사고 발생 시 위험도 크다고 한다. 이씨는 “정부의 대책이나 국민들의 관심사는 시내버스보다는 광역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시내버스에도 혜택이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뤄질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선버스업을 근로기준법 59조상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잠정 합의했다. 특례업종에 해당하면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노동을 할 수 있다. 이씨는 “사고가 터진 뒤에야 정부나 정치권에서 대책을 내놓은 걸 보니 씁쓸하다”고 했다. 이씨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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