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생산 방식 변화수출중심 국가 타격 우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포스트 코로나19 - 대전환 시대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2020 경향포럼>에서 화상으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전 세계 초기 경제 대응은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없이도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으리라 낙관하기는 어려운데,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책이 줄어들고 소비·생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많은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0 경향포럼>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국제통상이론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경제위기와 통화위기를 연구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뉴욕에서 원격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강연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로 미국과 유럽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느 나라가 상대적으로 성장률 하락폭을 낮췄는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주간 실업급여를 600달러로 늘리는 등 취약계층에게 직접 지원하는 대책을 폈다. 유럽 국가들은 기업을 지원하면서 기업이 노동자들을 해고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경우 경제주체들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이 국내 빈곤율의 상승을 막았다”며 “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 감소와 실업자 발생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취약계층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면서 최악의 경제위기는 막았다”고 말했다.
다만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 지원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미국이 추가 실업급여 지급을 중단하면서 총 700억달러에 달하는 구매력이 일순간 사라지게 됐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업급여 연장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1~2개월이 더 걸려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또 “미국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언론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2차 확산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확산이 현실화됐다”며 “미국은 정부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경제정책의 갈피를 잘못 끼웠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나타난 미국 가계의 소비성향에 주목했다. 그는 “올해 5, 6월의 미국 저축률을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배급제를 시행하던 1944년과 맞먹는다”며 “미국인들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낮은 분야에 소비를 특별히 늘리지 않고 저축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향후 가계가 소비를 더 줄일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바뀐 생활패턴에 가계가 적응해가면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소비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코로나 고위험군’으로 꼽힐 수 있는 관광업, 요식업 관련 소비가 줄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부분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크루그먼 교수는 소비보다 생산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가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바뀐 생산방식에 얼마나 적응하느냐, 생산 수준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따라 한국 같은 수출 중심 국가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변화에 대해 예측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재택근무가 확대되면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근무하는 형태부터 교통에 대한 수요까지 다양한 변화가 발생하고 각 분야의 경제적 가치가 달리 매겨질 수 있다”며 “당장 사무실의 수요가 줄면 상업 부동산 분야에 위기가 발생하고, 이것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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