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열심히 산다
김화진 지음
민음사 | 196쪽 | 1만5000원

제목만 보면 치밀하고 영악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망쳐놓으려는 악마의 모습이 상상된다. 막상 마주하는 ‘악마 Z’는 사람을 100명씩 죽이거나 싸움 붙이는 일 같은 “인정을 받는 일, 위대한 악마가 되는 일”에는 “지레 질려 버린 타입”이다. “한 커뮤니티를 잘 쑤셔서 악플러를 대거 양성하고… 대규모 고소로 사방에서 합의금을 지출”시킨 게 최고 업적이다. 그저 보일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 동시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악마 Z는 집에 사는 가영과 계약을 맺고 가영의 몸으로 산다. 인디밴드에서 건반을 치던 가영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소설의 배경이라 일거리를 잃은 예술가의 생활고 탓인 듯싶지만, 사실 같은 밴드 멤버의 스캔들에 휘말려 당한 사이버불링이 그를 피폐하게 했다.
악마 Z가 가영의 모습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등 바삐 살면서, 가영의 모습은 오히려 기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쥐만 한 크기의 악마 Z 몸으로 살게 된 가영도 만족한다. 그런 악마 Z 앞에 종현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의 열을 감지하는 능력을 지닌 종현은 사람보다 체온이 높은 악마 Z를 막아선다. 종현은 다른 악마와의 거래로 이 능력을 얻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얻지만 애정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는 못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종현은 이 사실을 가영의 몸을 한 악마 Z에게 털어놓는다.
소설의 주를 이루는 셋의 만남과 헤어짐은 역설의 연속이다. 꿈이 작은 악마 Z에게 친구 악마들은 “정신 차리라”며 채근한다. 악마 중의 열등생인 악마 Z는 무기력한 인간 가영의 몸을 빼앗는데, 오히려 악마가 든 가영의 몸과 악마의 몸에 들어간 가영은 모두 기운을 되찾는다. 악마 Z와 가영 모두 상대방의 몸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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