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를 받고서도, 그보다는 성장이 더딘듯 했던 두 골키퍼가 같은 날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나란히 ‘맨 오브 더 매치’(MOM)에 선정됐다. 하지만 팀의 운명은 서로 갈렸다.
2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끝난 월드컵 16강 스페인-러시아전에서 러시아 골키퍼 이고리 아킨페예프(CSKA 모스크바)는 경기 최고 활약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MOM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러시아는 패스가 날카로운 스페인에 대비해 철저히 수비 위주로 경기를 풀어갔다. 자기 진영에 선수 10명이 자리했지만, 스페인은 그 와중에도 1000개가 넘는 패스와 25개의 슈팅, 9개의 유효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책골을 제외하고 한 골도 내주지 않은데는 최후방 아킨페예프의 활약이 빛났다. 날카로운 침투 패스에 공격수와 일대일 상황을 맞을 때에도 침착한 선방으로 공을 걷어냈다. 튕겨나온 공은 수비진이 잘 처리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버티기 전략이 적중해 승부차기까지 갔고, 여기서 아킨페예프가 다시 한 번 빛났다. 슈팅을 두차례 막아내면서, 네 키커가 모두 승부차기를 성공한 러시아를 8강으로 이끌었다. 러시아를 유로 2008 4강으로 이끌며 차세대 골키퍼가 될 재목으로 평가받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실수로 ‘기름손’이란 오명도 안았던 아킨페예프가 명예회복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는 아킨페예프의 선방에 힘입어 구 소련 붕괴 이후 첫 월드컵 8강에 올랐따.
같은 날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이어 벌어진 크로아티아-덴마크전의 MOM은 덴마크 골키퍼 카스페르 슈마이켈(레스터 시티)이었다. 슈마이켈 역시 필드골을 한 골 허용하긴 했지만,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려다 동료를 맞은 공이 크로아티아 원톱 마리오 만주키치(유벤투스) 발 앞에 떨어지는 불운 탓이 컸다.
덴마크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상대보다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크로아티아가 스페인처럼 일방적으로 상대를 때리지는 못했지만, 22번의 슈팅과 7번의 유효 슈팅은 골키퍼로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슈마이켈은 이를 대부분 막아냈다. 연장 후반 11분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의 페널티킥을 막는 장면은 하이라이트였다.
덴마크의 유로 92 우승을 이끈 명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다니는 카스페르 슈마이켈은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10여년 전 꿰찼다. 하지만 조 하트와 셰이 기븐이 맨시티에 합류하며 오랜 임대생활을 거쳤다. 그러다 레스터 시티에서 팀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월드컵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도 이 경기 포함 4경기에서 단 2골만 내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나 아킨페예프와 달리 8강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승부차기에서 두 번의 선방을 선보였지만, 크로아티아 골키퍼 다니옐 수바시치(AS 모나코)의 선방이 하나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차이로 팀은 20년만의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슈마이켈은 경기 최고의 활약을 하고도 웃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피터 슈마이켈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지켜본 터라 아쉬움은 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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