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증언들>

드라마 <증언들>에 등장하는 학교의 ‘자두 소녀’ 학생들과 ‘진주 소녀’ 데이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1. 짙은 자주색의 긴 원피스를 입은 소녀들이 공원에 모여 뛰어놉니다. 인솔자가 소녀들을 부릅니다. ‘현장학습’ 중이던 소녀들이 모인 곳 앞에서는 5명이, 아니, 목을 맨 5구의 시신이 매달려있습니다. 까마귀는 그중 한 구의 목에서 뭔가를 물어뜯었습니다. 한 소녀가 읊조립니다. “역겨워.” 인솔자는 대꾸합니다. “주님의 심판은 아름다운 거야.”

#2. 소녀들은 학교에 모입니다. 식당 같은 건물 2층에 모여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입에 재갈을 문 남성 한 명이 질질 끌려옵니다. “이 남자는 우리 속에 숨어 있던 죄인이다. 자기 몸을 만지다(touching himself·자위하다)가 들켰지…어떻게 할까, 얘들아?” 아까의 인솔자 중 한 명이 묻습니다. “주님의 권능으로!” “처벌하라!” 소녀들은 기다렸다는 듯 외칩니다. 주먹을 쥐어흔들고, 난간을 두들기거나 손뼉을 치는 그들의 모습은 중요한 스포츠 경기장에서 본 듯합니다. 테이블과 연결된 둥근 톱날이 굉음을 내며 남성의 손을 향하자 함성은 더욱 커집니다.

드라마 <증언들>의 주 무대가 되는 학교.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에서 방영되는 훌루의 드라마 <증언들> 1화의 장면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작품이 주는 강렬한 기괴함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2를 보고 다시 #1을 떠올려 보니, 소녀들은 목을 매단 시신의 모습을 별로 놀랍지 않게 지켜봤습니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아니?” 인솔자가 묻자 한 소녀는 “강간요”라고 답합니다. 소녀의 표정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고 칭찬을 갈구하는 듯한 의지만 느껴질 뿐이죠.

<증언들>은 2019년 부커상을 수상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드라마입니다. 애트우드는 미국에 세워진 가상의 전체주의적 국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 <시녀 이야기>를 1985년에 펴냈습니다. 영문판 누적 판매 부수만 1000만부에 이른 <시녀 이야기>의 15년 후를 다룬 소설이 <증언들>입니다. <시녀 이야기>는 2017년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됐고, <증언들>도 올해 드라마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증언들>의 주요 등장인물인 애그니스(왼쪽)와 데이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두 소설 모두 가상의 국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합니다. 길리어드는 미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 전체주의적 국가입니다.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 원작이기 때문인지 드라마 <증언들> 초반부는 길리어드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길리어드가 주는 위화감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므로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들으면서 20세기 이전 근대일 것 같던 시간적 배경이, 소총이나 인이어를 사용하는 현대나 근미래라는 걸 깨닫게 되면 기괴함은 배가 됩니다.

소설처럼 인물들이 입는 옷의 색깔이 주요한 소재가 됩니다. 이차 성징을 앞둔 소녀들은 자주색 옷차림으로 ‘자두’라 불립니다. 초경을 겪으면 ‘그린’이 돼 원피스에 배지를 달고 중요한 행사에선 녹색 드레스를 입죠. 이들은 보통 검은 정장을 즐겨 입는 ‘사령관’들의 딸들입니다. 길리어드의 고위 공직자로 추정되는 사령관들의 집에는 밝은 파란색의 원피스를 입은 아내와 회색 유니폼·두건을 쓴 하녀들이 함께 생활하죠. 사령관의 딸들은 초경을 마치고 다른 사령관과 결혼해 자녀를 출산하는 걸 삶의 목표로 여깁니다. 애트우드가 소설로 비판했던 지점도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묘사한 이 부분이고요.

드라마 <증언들>의 주인공 애그니스는 집에서 하녀의 도움을 받아 치장을 합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대부분 드라마가 그렇듯 이 이상한 곳에 ‘나만 정상인’이 나타나며 극이 시작됩니다. 데이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다가 부모를 잃습니다. 부모님이 사실 반(反) 길리어드 세력인 메이데이에 속했으며, 사망 사건도 길리어드의 소행이라는 말을 듣고 길리어드에 적개심을 품습니다. 데이지는 가짜 신분증과 함께 주인공인 애그니스가 다니는 학교에 ‘진주 소녀’로 잠입하게 됩니다. 흰옷을 입고 자두 소녀들을 하녀처럼 보필하는 진주 소녀들은 길리어드 밖에서 개종해 학교로 들어온 이들입니다. 길리어드 학교에서 쓸 법한 정제된 언행을 해야 하지만, 데이지의 솔직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거친 말로 튀어나옵니다. 이런 장면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데이지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불안해합니다.

애그니스와 데이지, 그리고 학교의 교장 격인 리디아 이모(소설에서는 아주머니)가 번갈아 각화의 화자가 됩니다. 데이지와 리디아 이모의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소개되며 줄거리에 살을 붙입니다. 이들이 하는 말은 곧 드라마의 제목처럼 ‘증언’이 됩니다.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유사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한 공간에 놓인 상반된 처지 인물의 얼굴을 동시에, 또는 차례로 확대해 보여주며 극이 진행됩니다.

15일까지 시즌 1의 10부 중 8부가 공개됐습니다. 정체를 들킬 뻔한 데이지, 데이지의 영향을 받아 가는 애그니스의 앞날, 그리고 길리어드의 미래를 드라마가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이 갑니다.

드라마 <증언들>의 주요 등장인물인 애그니스(왼쪽)와 데이지.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