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현장
9일 공식 개막 하루 전 10여개 국가관 ‘파업’
개막식 예정됐던 시상식도 폐막일로 연기
비엔날레 상징 ‘황금사자상’도 관객 투표로 대체

지난 7일(현지시간),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관이었다. 전시장 주 출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관람객 줄은 가장 길었다. 오후 4시, 건물 앞 크레인이 들어 올린 대형 종 몸통 안에 안전 장비만 걸친 나체의 공연자가 들어섰다. 그는 스스로 추가 돼 격렬히 종의 몸통을 두들겼고, 관람객들은 그 모습을 바삐 사진에 담았다.
다음 날, 오스트리아관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굳게 닫힌 전시관 문엔 “팀원들은 17개국 이상 다국적으로 구성됐습니다. 일부 팀원이 파업에 동참하기로 해서 오늘은 문을 닫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가자지구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의 비엔날레 참여에 항의하는 작가들과 노동자들이 이날 일시 파업에 돌입하면서 오스트리아관도 문을 닫은 것이다.

하루 사이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 오스트리아관은 전쟁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년 전과 달리 러시아·이스라엘이 참여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심사위원 총사퇴와 시위, 일부 국가관과 작가들의 파업 등 진통이 따랐다.
비엔날레에 복귀한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향해 지난 6일 전시장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더니, 8일에는 여러 국가관이 온종일 또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한국관도 여기에 참여했다. 비엔날레 기간 한국관이 문을 닫은 것은 1995년 설립 후 처음이다. 한국관은 입구에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세계의 파괴임을 알기에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문구의 포스터를 붙였다. 한국관은 이날 오후 예정된 1시간의 퍼포먼스 때만 문을 열고는 내내 폐관했다.

최빛나 예술감독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팔레스타인은 해방 운동의 모범과 영감이 되고 있는 땅과 나라”라며 “파업에 동참하는 게 ‘해방 공간’이라는 한국관 전시의 의미를 더해준다. 참여하지 않으면 모순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관을 관리·주최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범헌 위원장은 “예술감독의 의견을 존중해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영국관·프랑스관·벨기에관·네덜란드관·일본관 등 10여개 국가관이 파업에 동참했다. 벨기에관은 입구에 전시에 쓰인 ‘STOP’ 팻말을 두고 “팔레스타인은 세계의 미래”라는 포스터를 붙였다. 네덜란드관은 팔레스타인 국기와 포스터를 걸었다. 영국관·프랑스관·일본관 등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한 뒤 재개관하기도 했다.
이 같은 파업은 ‘학살에 반대하는 예술 동맹’(Art No Genocide Alliance·ANGA)이 이스라엘의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를 규탄하는 차원의 파업을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ANGA는 지난 3월 이스라엘의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에 반대하는 비엔날레 참석자 23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일 파업과 베네치아 시내 행진을 계획했다. 작가와 노동자들, 각 국가관의 예술감독들도 동참 여부를 논의한 끝에 10여개 국가관이 다양한 방식으로 파업에 참여했다.


이번 파업은 한시적으로 진행됐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반전 여론이 높아 비엔날레가 전시 기간 중 우여곡절을 겪으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3월에는 작가 70여명이 러시아·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이란 전쟁을 일으킨 미국도 비엔날레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한국계인 갈라 포라스-김도 포함됐다. 그는 지난 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술가가 각 국가를 대표하는 것 같은 구도로 진행되는 비엔날레가 과연 지정학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쟁 여파로 베니스비엔날레 시상식도 연기됐다. 러시아·이스라엘관 참여로 심사위원단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인물이 이끄는 국가에는 상을 수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전원 사임하면서 개막식인 9일 열릴 예정이었던 시상식은 폐막일인 11월22일로 연기됐다. 수상자 선정 방식도 심사위원 심사에서 관람객 투표로 번경되면서 비엔날레를 상징하는 황금사자상은 관람객 인기투표로 대체됐다.

한편 베니스비엔날레 최고 화제가 된 오스트리아관은 나체의 공연자들이 등장하는 퍼포먼스로 입소문을 탔다. 퍼포머는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수조에 담긴 물은 관람객이 쓰는 간이 화장실의 소변을 정수한 물이다. 환경을 오염시킨 뒤 이를 정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풍자한 오스트리아관의 전시는 파격적인 소재로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파격적인 소재로는 덴마크관도 관심을 끌었다. 가상의 대형 정자 은행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전시장을 채운 대형 화면에 상영된다. 증강현실(VR) 포르노그래피 시청이 정자의 운동성을 높인다는 덴마크 정자 은행의 연구 결과가 소재였다.

일본관은 아기 인형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다. 흔히 보고 자랐던 인형들과 모습이 다를 게 없지만, 실제 아기들과 비슷한 무게 5㎏로 만들어져 이를 들어 올리는 관람객들이 육아 경험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전시장 내부의 구조물과 설치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 외부의 계단이나 난간, 심지어 바로 옆 한국관에도 여러 색 피부의 아기 인형들이 자리한다. 캐릭터에 강한 일본 문화의 특성이 연상되면서도 보는 이들에게 직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관은 베트남 이민자 출신 작가 성 티우가 전시장 외벽을 옛 동독 베를린의 베트남 주거단지 외관으로 덮어씌웠다. 독일 통일 전후 유입됐다가 동독 붕괴와 함께 일자리를 잃은 베트남 노동자들은 ‘불법의 온상’처럼 낙인찍히며 차별의 대상이 됐다. 1938년 나치 독일 때 세운 건축물을 이민자들의 아픈 역사가 담긴 설치작으로 가리면서, 지금까지 남은 차별과 배제를 떠올리게 한다.

호주관은 어두운 전시 공간 가운데 팔각형 구도로 대형 화면을 세웠다. 추상 회화 같은 화면 속 이미지는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아랍의 전통 양식을 연상시키는데, 작가 칼레드 삽사비는 바논 출신 이민자다. 삽사비는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비엔날레 본전시 초반부에도 비슷한 작품 ‘Khalil’을 출품했다. 소수자에게 주목한 본전시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시시각각 움직이는 작품의 모습은 다양한 문화·언어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유연함을 은유한다.
우크라이나관은 ‘종이접기 사슴’ 조각을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거쳐 베니스비엔날레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영상으로 출품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포크로우스크에 세워졌던 조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던 2024년 8월부터 피난길에 오른다. 유럽 여러 도시를 순회한 조각의 여정은 우크라이나관 내 여러 화면의 영상으로 동시에 나타나고, 조각은 자르디니 전시장에 크레인에 매달려 도착했다.
미국관은 알마 앨런의 조각들을 선보였는데,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지 말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지침 탓인지 전시에 대한 반향은 적었다.

'문화는 이렇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월16일][오마주] 밝고도 기괴한…명작 속 자두빛 소녀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0) | 2026.05.17 |
|---|---|
| [5월10일]바젤리츠의 마지막 황금빛, 이우환의 평생 예술···베니스에 펼쳐진 거장의 예술세계 (0) | 2026.05.17 |
| [5월8일]침묵에서 느끼는 연대, 몸짓으로 깨우치는 인간의 조건…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 작가들 (0) | 2026.05.17 |
| [5월7일]한강의 애도, 해녀의 숨···베니스비엔날레에 스며든 한국 (0) | 2026.05.17 |
| [5월7일]연막탄에 “집단학살관 물러나라” 항의 물결···전쟁 비켜가지 못한 베니스비엔날레 (0) | 2026.05.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