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금감원이 최고 수준 ‘소비자경보’ 내린 원유 ETN
ㆍ삼성전자 주식과 다른 점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국면에서 삼성전자 주식과 원유 가격의 행보는 닮았다. ‘설마 삼성전자가 망하겠느냐’는 낙관은 ‘떨어진 유가는 언젠가 오르겠지’라는 기대치와 통한다. 둘 다 폭락은 했으나 결국 반등한 전례가 있었고, ‘하락장은 투자의 적기’라는 생각에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지난 9일 금융감독원은 레버리지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상장지수증권(ETN) 투자자에게 최고 등급인 ‘위험’ 수준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금감원이 2012년 6월 각종 금융상품 관련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 ETN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있고, 그들이 손해를 볼 위험성 또한 크다는 것이다.
기대수익이 크면 손실 위험도 크다는 게 금융상품 이치라지만, 원유 관련 레버리지 ETN에 유독 위급 경보가 떨어진 건 왜일까. 삼성전자 주식과 닮은 것 같지만 다른 ETN만의 특징을 이해하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삼성전자 주식은 ‘소량 즉시 거래’
원유는 선물 기반 금융상품에 투자
삼성전자 주식은 시장이 열려 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이 원하면 소량으로 즉시 사고팔 수 있다. 보통 선물(先物) 형태로 거래되는 원유는 개인이 직접 투자하기 어렵다. 배럴당 20달러면 낮은 가격이라지만, WTI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00배럴(약 158.9㎘) 단위로 거래되며 첫 거래 시 낼 위탁보증금만 7370달러(약 900만원)다.
개인은 대신 원유 선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국내 증권·금융투자회사들이 발행한 ETN은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있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 레버리지 원유 ETN 1주의 가격은 유가 폭락 전인 지난해에도 2만원을 거의 넘지 않았다.
원유 ETN과 삼성전자 주식에 사람들이 몰린 건 ‘싼값에 사들이면 장기적으로 가격이 올라 이득을 볼 것’이란 기대심리 때문이다.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있지만 수익률이 큰 ‘레버리지’ 상품은 드물다는 점에서 레버리지 ETN을 더 많이 찾았다. 그 덕에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수요가 늘었다. 삼성증권의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의 지난해 일간 최다 거래량은 40만4713주(9월16일)였다. 그러나 3월18일부터는 하루 거래량이 1000만 단위를 넘어서더니 지난 6일 하루 거래량은 1억9116만주에 이르렀다.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다른 회사의 WTI 원유 ETN 상품 거래량 추이도 비슷하다.
‘폭락 뒤엔 결국 반등’ 기대심리에
하루 거래량 2억만주 육박 ‘과열’
시장서 소화 힘든 물량 쏟아지며
증권사, 가격 괴리율 조정 불가능
문제는 국내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량이 많아지면서 발생했다. ETN이 추종하는 WTI 선물 가격(지표가치)과 ETN을 사고파는 투자자 사이에서의 실제 가격(시장가격) 사이엔 차이가 있다. 이를 괴리율이라 한다. 유가를 반영한 ETN 주당 지표가치가 1만원이고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이 1만5000원이면, 괴리율은 50%가 된다. ETN 거래량이 적었을 때는 증권사가 가진 ETN 물량을 바탕으로 괴리율을 6% 이내로 조정할 수 있었다. 시장가격이 과열되면 증권사가 ETN 물량을 시장에 풀고, 반대 상황이면 증권사가 ETN을 사들였다. 이런 증권사의 역할을 유동성공급자(LP)라고 한다.
그러나 ETN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면서 증권사가 LP 역할을 위해 보유했던 ETN 물량도 모두 개인에게 팔렸고, 투자자들의 매수·매도만으로 시장가격이 결정되게 됐다. 그 결과 지난 8일 삼성증권 상품의 경우 종가 기준 괴리율이 95.4%에 이르렀다. 이렇게 괴리율이 커지면 원유 가격 변화가 ETN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다. 앞서 예를 든 경우에서 괴리율이 조정되지 않은 가운데 유가만 40%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지표가치는 1만4000원으로 뛰는데, 증권사가 가격을 조절하지 못해 ETN의 시장가는 1만5000원에 머무르게 된다. 시장이 과열됐을 때 ETN을 1만5000원에 사들인 사람은 유가가 올라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5거래일 연속 종가 기준 괴리율이 30%가 넘자 지난 16일 한 차례 거래를 정지한 데 이어 17일 재개된 거래에서도 해당 상품들의 괴리율이 30%를 넘어 20일에도 거래를 정지하기로 했다. ETN 괴리율이 장기간 높다면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될 수도 있기에 증권사들은 LP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ETN을 금감원에 추가 발행하겠다고 신고했다.
그렇다면 ETN 시장가격은 떨어지겠지만, 시장가격이 높을 때 ETN을 사들인 사람이 손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다. 이들은 원유 가격이 대폭 상승할 때까지 ETN을 팔지 않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괴리율이 높을 때 투자를 시작하면 여러모로 이득을 보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유가 좋은 투자 상품으로 각광받는다 해도 지금처럼 괴리율이 클 때는 ETF 등 다른 상품을 찾아보는 게 손실을 줄이고 투자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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