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씻는다는 것의 역사
이인혜 지음
현암사 | 392쪽 | 2만7000원
“대중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독립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조선 말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가 자신의 일기에 썼다는 말이다. 또 다른 개화파 지식인 박영효는 1888년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 ‘건백서’에서 “인민들에게 목욕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라”고 했다. 씻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조선 말 개화파 지식인들에게는 ‘열강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 지배할 이유 중 하나로 불결함을 들었다. 그 때문인지 개화파가 세우라고 주장한 근대 공중목욕탕은 조선 내에 19세기 일본인 거류지에 먼저 들어섰다. 가정마다 욕실을 둘 수 없던 시기, 조선인의 위생 수준은 일제강점기 공중목욕탕 설치와 함께 높아졌지만 목욕탕은 조선인 차별의 공간이기도 했다. “조선인은 받지 않는다”는 목욕탕 주인들 탓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목욕탕 내에서의 차별은 없지만, 목욕탕 접근성은 양극화되고 있다. 수도권 밖은 인구가 감소하며 목욕탕이 문을 닫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운영비가 오르는 데다, 가정에서 씻는 게 익숙한 이들이 늘어나며 목욕탕이 줄고 있다. 하지만 고시원, 쪽방촌, 옥탑방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에겐 여전히 목욕탕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목욕탕을 닫지 못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접 목욕탕 운영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책에서 서양과 한국의 목욕 흥망사부터, 목욕의 사회적 의미,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이태리타월과 목욕탕 수건까지 광범위하게 다뤘다. 그는 연구를 위해 전국의 목욕탕을 돌며 하루에 두어 번씩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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