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불길 잡는 소방관들</b>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7B지구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주민 실화로 추정되는 이날 불은 2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연합뉴스

불길 잡는 소방관들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7B지구에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주민 실화로 추정되는 이날 불은 2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에 큰 불이 나 거주민들의 가건물 4동을 태우고 2시간 만에 꺼졌다. 다행히 사망·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재개발사업이 진전된 후에도 큰 불을 피하지 못한 ‘상습 화재구역’ 구룡마을의 위험성이 다시 부각됐다.

29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50분쯤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주거지역인 7B지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4개동 26가구가 불에 탔다. 이 화재로 1명은 쇼크 증세를 보여 현장에서 처치를 받았고, 다른 1명은 연기를 흡입하고 1도 화상을 입어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불길이 쉽게 진압되지 않은 데다 인근 대모산으로 번질 우려가 있어 80대의 소방차량과 190명의 소방관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화재는 오전 10시50분쯤 완전 진압됐다. 소방당국은 가건물 4개동과 각종 집기도구를 포함해 수천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거주민 김모씨(70)가 안전스위치를 켠 채 야외용 가스히터를 손질하던 중 가스가 새어나온 것을 모르고 점화스위치를 눌러 화재가 발생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김씨의 실화(실수로 낸 불)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화재는 약 2시간 만에 진압됐지만 거주하던 40여명은 졸지에 이재민이 돼 개포1동 주민센터로 몸을 옮겼다.

구룡마을은 1970~1980년대 공공사업으로 도시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인 대규모 판자촌으로 그동안 화재 상습지역으로 악명을 떨쳤다. 1999년에는 총 3차례의 화재로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2012년에는 30분간 난 불로 4개동 21가구가 불에 탔다. 2014년 11월에도 고물상에서 시작된 화재로 1명이 숨지고 16개동 63가구가 불에 탔다.

구룡마을은 무허가인 탓에 전기나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화재에 취약하다. 2011년 구룡마을 개발이 결정됐지만 개발 방식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갈등을 빚으며 거주민들이 놓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강남구가 주장한 100% 공영개발 방식을 받아들이며 상황이 진전됐다. 올 2월에는 강남구가 민영 개발을 주장하는 일부 토지주와의 행정소송 최종심에서 승소하면서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고, 주민 일부가 이주를 시작했다. 개발이 끝나면 양재대로변은 최고 35층 고층 주상복합단지로, 대모산과 구룡산 쪽 뒤편은 저층 공동주택 단지로 재탄생하게 된다.

개발이 착수되면 상습적인 화재 위험도 해결되겠지만 아직 남아 있는 거주민들은 대형 화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떡솜’이라 불리는 보온용 솜과 비닐, 합판 등 구룡마을 가건물의 주소재는 화재 발생 시 불에 잘 붙고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 이날 화재도 LPG통, 난방용 기름보일러 등이 밀집된 탓에 진압이 어려웠다. 전기를 끌어다 쓰기 위한 도전선도 외부에 노출돼 얽혀 있어 누전 등으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도 크다. 안무영 한국건설안전협회 회장은 “재개발 착수 전에라도 구룡마을 거주민들을 위해 시나 구 차원에서 방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승민·최민지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