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이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장에 놓인 나무판자 한가운데로 누군가 걸어가더니, 왼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은 채 둥근 원을 그린다. 그는 원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원의 윤곽선을 걸으며 말한다. “저기”, “여기”, “거기”, 그리고 “어디, 어디, 어디…”.

한국 행위예술의 선구자인 이건용(84)이 선보인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는 이렇게 진행된다. 이건용은 자신의 개인전 ‘사유하는 몸’의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직접 기자들 앞에서 1970년대부터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건용은 자신의 예술 활동 50주년을 맞이한 이번 전시를 앞두고도 조금 느릿해졌을 뿐 무리 없이 과거의 몸짓을 재현해냈다.

이건용이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에서 퍼포먼스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퍼포먼스 후 기자들과 만난 이건용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을 수차례 언급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언어가 사용될 때 비로소 생명을 갖는 의미에 대해 탐구해왔다. 이건용은 “언어가 가질 수 있는 정확성, 그것을 통한 소통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부터 혼자 고민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소의 논리’에서, 사람이 선 자리에 따라 같은 장소가 ‘저기, 여기, 거기’ 등으로 다르게 불리는 것을 보인다.

그 움직임의 의미를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이건용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좋았다. 그런 것으로 소외되면 살맛이 났다”며 “나를 돈 사람, 틀린 사람으로 생각한 것이 새 일, 새 생각을 하게 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장소의 논리’ 외에도 1970년대 이건용이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찍은 영상과 사진이 함께 공개된다. ‘손의 논리 3’(1975)이나 ‘건빵 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등을 선보였을 당시의 사진과, 각 퍼포먼스의 행동 순서를 담은 지시문이 함께 걸리고 있다.

이건용이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용의 오랜 예술 활동은 박정희의 군부 독재기에 시작됐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현대에서도 해석하기 쉽지 않은 행위예술이, 더욱더 엄혹하고 경직된 과거엔 불온하게 여겨지곤 했다. 이건용은 “‘이리 오너라’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누군가 ‘이리 오너라’라고 부르면 나는 그를 다리 사이로 쳐다본다든지, 권력자를 모욕하는 것 같은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여기서 퍼포먼스를 열지 말라’는 공문을 받고는 동료들 앞에서 이를 불태워 환호를 받기도 했다. 엄혹한 시기를 떠올리면서도 이건용은 “지금 생각하면 (공문)복사본을 태울 걸 그랬다”며 웃었다.

이건용은 2020년대에도 회화 작품을 그려왔고, 이번 전시를 위해 ‘성냥 켜기’ 퍼포먼스를 재연해 영상으로 남겼다. 전시 기간 퍼포먼스도 두 차례 예정돼 있다. 이건용은 “손이 떨리고 힘이 모자랄 때 뭘 하려고 하면, 그게 또 재미난 작품이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5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