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여기 봐줘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열명 남짓한 여학생이 몰려들었다. 중·고생쯤 돼 보였는데, 대부분 검은색 패딩 차림이라 팬클럽 같았다. 그들이 보내는 사랑스러운 시선의 방향을 따라가니 방송 카메라 앞에 선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대표 권선우(19·한국체대)가 있었다. 권선우는 몰려든 ‘팬’들을 쑥쓰러운 듯 돌아봤다. 스노보드를 손에 쥔 몸은 바짝 굳어있었지만 싫지는 않아 보였다.
지난 12일 강원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호응도로 순위를 매긴다면 권선우가 단연 1등이었다. ‘천재 소녀’ 클로이 김(18·미국)이 홀로 90점대 연기를 선보였지만 미치지는 못했다. 클로이 김에 대한 환호는 높이 점프할 때, 슬로프 아래서 최고점을 받았을 때가 절정이었다. 하지만 권선우에게는 점프부터 착지까지, 스타트부터 피니시까지 환호가 끊이질 않았다.
권선우도 그 환호를 들었던 것 같다. 권선우가 1차 예선 출발선에 섰을 때, 긴장한 듯 굳어있는 표정이 전광판에 잡혔다. 스타트는 했지만 잠시 보드를 하프파이프 방향과 수직이 되게 세우고 멈춰섰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결심한 듯 코스를 탔다. 점프한 뒤, 한 손으로 보드를 잡았다. 그 다음 점프에서 수직으로 세운 몸을 축으로 한바퀴 반, 한바퀴 반, 다음에 두바퀴… 그 순간 권선우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관중석의 탄식만큼이나 아쉬웠을 1차 예선을 뒤로 한 채 2차 예선에 나섰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잠시 움켜 쥔 권선우는 1차와 똑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두바퀴를 돌았고, 이번엔 선 채로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한번 더 공중에서 옆돌기를 마친 뒤 결승점에 다다른 권선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성적은 세계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났다. 1차 예선 19.25점, 2차 35.00점. 결선 진출 커트라인인 62.75점의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권선우의 이날 경기는 한국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선수로는 사상 처음 치른 올림픽 경기였다.
한 번 넘어졌는데도 다시 일어나 기어코 공중 기술을 성공시킨 모습에 반했는지 여학생 팬들까지 생겼다. ‘걸 크러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게 하는 현상. 여학생들이 여자 아이돌에 환호하는 상황이 대표적인 예인데, 경기 끝난 뒤 권선우도 ‘아이돌’이 된 듯 했다.
그래도 권선우는 담담했다. 한국 여자 첫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경기를 뛴 데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큰 환호를 들으니 “더 떨렸다”며 “두번째도 떨렸지만, 넘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권선우는 일찍 첫 도전을 마무리지었지만 “기술을 보강해 다음 올림픽 때는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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