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희비’ 모굴 자매, 언니가 건넨 따뜻한 격려
ㆍ한국 최고 성적 낸 서정화, 사촌동생 서지원에게 “즐기자”
지난 11일 강원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모굴 슬로프엔 우려했던 강풍이 불지 않았다. 하지만 슬로프 아래서 묘한 냉기가 돌았다. 그곳엔 여자 모굴 국가대표 서정화(28)와 사촌동생 서지원(24·이상 GKL)이 함께 서 있었다.
둘은 2차 예선 경기를 막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지나는 통로 양옆에 둘은 따로 서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1차 예선 도중 넘어져 최하위에 그친 서정화는 2차 예선에서 부진을 극복해 71.58점을 올렸다. 70점이 넘는 고득점을 따낸 뒤 경쟁자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나 서지원은 부진했다. 큰 실수 없이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전광판에 뜬 2차 예선 순위는 11위. 결선에 진출하려면 10위 안에 들어야 했다.
서지원은 기자들이 기다리던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아무 말 없이 빠져나간 뒤, 가만히 서서 경기를 지켜봤다. 결선 진출 가능성이 높았던 서정화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둘은 대화는커녕 서로를 보지 않고 전광판만을 바라봤다. 3~4m쯤 될까 했던 둘 사이의 거리엔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순간 서지원이 올림픽을 앞두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족이긴 한데, 그 이전에 같은 팀 라이벌 선수잖아요. 차라리 다른 가족처럼 치고받고 싸우면 금방 풀리기라도 할 텐데, 선수이다 보니 예민할까 봐 서로 건드리지도 못해요.” 가족이자 라이벌인 묘한 관계. 어떤 상황일지 짐작은 갔지만, 서로의 희비가 갈린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결국 서정화는 결선에 올랐다. 한국 여자 모굴 선수 올림픽 최고 성적인 14위를 기록했다. 훈련 도중 오른 골반 부상을 당하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분전한 끝에 거둔 성과였다. 서정화는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나마 오늘 같은 결과를 냈다”고 했다. 이어 서지원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지원이도 같이 노력했는데, 결선에 못 올라가서 아쉬워요. 하지만 경기는 잘한 것 같아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예선을 마치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던 서지원에게 서정화는 아마도 곧장 다가가 말을 꺼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꺼낸 격려의 한마디에서 동생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침 경기장에는 바람이 잦아들고 소복소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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