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만 국한된 반짝 활약일까. 아니면 진화에 성공했다는 증거일까.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은 타자가 페어지역으로 날린 타구들 중 얼마나 많은 타구를 안타로 만들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타격 스타일에 따라 지표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라운드에 떨어진 타구를 측정 대상으로 삼기에 홈런수가 많으면 BABIP은 낮게 나온다. 강하고 빠른 타구, 소위 ‘질 좋은 타구’를 양산하는 선수의 BABIP는 높게 나온다.

안타는 타자가 친 타구의 질이 좋을 때 늘어날 수도 있지만, 수비수들이 자리잡지 않은 곳으로 타구가 자주 날아갈 때, 속칭 ‘운이 좋았을 때’도 늘어난다. 따라서 특정 선수의 한 시즌 BABIP이 평년보다 높았을 경우, ‘선수의 타구질이 좋아졌을 가능성’과 ‘그해 유독 운이 좋았을 가능성’ 등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왼쪽부터 오재원, 김현수, 최주환. 이석우 기자

왼쪽부터 오재원, 김현수, 최주환. 이석우 기자

올해 타격 성적이 뚜렷하게 좋아진 선수들 중에도 BABIP이 평년보다 크게 상승한 이들이 있었다. 두산 오재원은 올해 BABIP이 3할9푼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두번째로 높았다. 1위 구자욱(삼성)의 올해 BABIP(0.397)이 통산 BABIP(0.388)과 큰 차이가 없던 반면, 오재원은 통산 성적(0.332)과 지난해 성적(0.294)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미국 진출 전에도 수준급 타자였던 김현수(LG)의 경우에도 올해 BABIP이 3할7푼7리로 평년보다 꽤 높았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진출 전 3시즌 동안 김현수의 BABIP은 매년 3할2푼대에 머물렀고, 올해를 포함해도 통산 BABIP은 3할3푼6리다. 팀을 옮기긴 했지만 홈구장은 여전히 잠실구장인지라 이적이 영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시 눈에 띄는 타격 상승을 이룬 두산 최주환의 경우에도 BABIP이 평년과 차이가 있었다. 최주환의 통산 BABIP은 3할2푼2리인데 반해 올해만 놓고 보면 3할5푼5리로 올랐다. 16타석에 들어섰던 2008년(0.364)을 빼고 가장 높은 기록이다. 4년 만에 3할 타자가 된 SK 포수 이재원 역시 올해 BABIP이 3할5푼5리로 최근 4년 중 가장 높았고 평균(0.323)도 상회했다. 공교롭게 이재원은 3할3푼7리의 고타율을 기록했던 2014년에도 BABIP이 3할6푼8리에 달했다. 생애 최고 타율(0.324)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쥔 두산 3루수 허경민 역시 올해 BABIP이 3할4푼으로 2016년(0.310)과 지난해(0.288)보다 늘었다.

물론 갑작스런 BABIP 상승을 단순히 운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두산의 세 선수들은 BABIP에 영향을 주지 않는 홈런 숫자도 올해 크게 향상했다. 비시즌 미국까지 건너가 타격 지도를 받은 오재원 등 이들은 장타력 향상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김현수 역시 미국에서 체계적으로 몸을 관리하고 파워를 향상하는 법을 배웠고,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데 여념이 없다. 실제 타구의 질이 좋아져 BABIP도 올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들에겐 내년에도 올해처럼 호성적을 내 실력 향상을 증명할 일만 남았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