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 원년 최우수선수(MVP) OB 박철순은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선수들의 수비율 순으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 원년 골든글러브는 팀동료 좌완 황태환에게 돌아갔다. 골든글러브는 처음에는 이렇듯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골드글러브처럼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었다. 1983년부터는 선정방식이 투표로 바뀌고, 이듬해 지명타자 부문이 신설되면서 공·수에 걸쳐 종합적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는 선수에게 돌아가는 상이 됐다.
다양한 부문의 성적들을 참고하긴 하지만, 골든글러브가 투표를 통해 선정된다는 점은 매년 수상 때마다 논란을 낳았다. 올해도 실력에 비해 인기가 높은 선수에게 표가 몰리거나 ‘우승팀 프리미엄’을 받은 선수가 표를 많이 받았다는 데 대한 불만 내지 비판이 어김없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일정한 지표를 바탕으로 골든글러브를 정해보면 어떨까. 원년 기준에 준해 수비지표를 바탕으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정해봤다. ‘세이버매트릭스’가 발달하며 다양한 야구 통계들이 등장했지만, 일단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의되는 수비율과 RF(Range Factor)를 바탕으로 정리해봤다.
■수비율로 본 골든글러브
수비율은 ‘야수가 자신에게 오는 공을 얼마나 실수없이 처리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오랫동안 쓰인 지표이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자살(刺殺·자신이 공을 직접 잡아 아웃시키는 것)과 보살(補殺·공을 던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도록 돕는 것)개념을 알아야 한다. 유격수 땅볼로 아웃을 하나 잡았다면 공을 잡아 1루에 던진 유격수는 보살수가 1, 공을 받은 1루수는 자살수가 1씩 각각 늘어난다. 외야수가 홈으로 공을 던져 홈으로 뛰던 주자를 포수가 태그아웃 시킨다면 공을 던진 외야수는 보살수가 1 늘고, 홈에서 태그아웃 시킨 포수는 자살수가 1 늘어난다. 다만 삼진 때는 포수에게만 자살수가 1 늘어나고 투수에게는 보살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수비율은 자살수와 보살수를 합한 뒤, 이를 수비기회(자살수+보살수+실책수)로 나눈 것이다. 실책이 늘어나면 수비율은 낮아진다. 실책을 단 한번도 기록하지 않았다면 수비율은 10할(1.000)이 된다.
수비율로 골든글러브를 시상한다면 각 포지션별로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단 수상자는 올해 골든글러브 후보 안에서 정했다.
투수 후보 중에는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실책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은 선수가 8명에 이르렀다. 타구가 인플레이된 뒤 투수 역시 1명의 야수가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내야·외야수들에게만큼은 공이 많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투구한 것은 헥터(201.2이닝)였다. 자살수는 다이아몬드가 11개로 가장 많았고, 보살수는 피어밴드가 29개로 가장 많았다.
외야수의 경우 후보 중 실책이 1개도 없던 선수는 정확히 3명 있었다. 버나디나의 경우 타격 등을 고려한 기존 투표에서도 골든글러브를 받은 데 이어 수비율로 측정해도 가장 좋은 숫자가 나왔다. 실책이 1개도 없던 탓이다. 셋 중에서도 버나디나가 가장 많은 이닝(1114.2이닝)을 외야수(중견수·우익수)로 수비했다. 다만 김성욱은 골든글러브 후보 기준인 720이닝을 정확히 턱걸이했다. 후보들 중 수비이닝이 가장 적었던 것이라 다른 후보들보다 실책을 범할 위기가 적었을 수도 있다.
■RF 순으로 본 골든글러브
다만 수비율에도 맹점이 있다. 수비 시도가 적으면 실책이 적게 측정될 가능성이 높다. 야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공에 가까이 갔다가 공을 놓치면 실책으로 기록될 수 있는 반면, 수비범위가 좁은 야수들은 공과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만큼 실책을 적게 범하게 되고, 수비율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이와 조금 다르게, 수비수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비했는지 측정하는 지표’가 RF(Range Factor)다. RF는 자살수와 보살수를 합한 뒤 이를 수비이닝으로 나누고, 다시 9를 곱해 ‘9이닝 동안 평균 몇 개의 아웃에 관여했는지’를 본다. 100이닝을 수비한 외야수가 있다고 하자. 그가 1개의 플라이 아웃을 잡는 동안 실책이 없었다면 그의 수비율은 1.000이 된다. 반면 그의 RF는 0.09에 그친다. 적극적으로 수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RF에서 R이 범위(range)를 뜻하기 때문인지 보통 ‘수비범위’를 측정하는 지표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선수의 물리적인 수비범위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비의 적극성을 측정하기 때문에 RF가 높은 선수가 ‘수비범위가 넓다’고 추론할 수 있을뿐이다. 물론 RF에도 맹점은 있다. 1루수의 경우 대부분의 땅볼 타구를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보다 자살 수가 월등히 높게 된다. 그래서 1루수와 외야수의 RF를 단순 비교해 수비 능력을 재단하기 어렵다. 내야수끼리도 차이가 크다. 3루수보다는 2루수·유격수가 내야 병살타 처리를 많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RF가 낮다. 다만 같은 포지션의 선수끼리는 어느 정도 우열을 가릴 수 있다.
역시 골든글러브 후보 중에서 RF를 측정해 1위를 가려봤다.
수비율이 실책 숫자와 연관성이 있던 것과 달리, RF는 실책수와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김하성의 경우 후보들 중 가장 실책수가 많았으나 RF는 가장 높게 나왔다. 투수 박종훈의 실책 4개도 투수 치고 적은 편이 아니다. 실제 골든글러브 수상자 중에서는 이대호가 이름을 올렸다. 이대호의 자살수가 898개로 후보들 중 가장 많았다. 앤디 번즈의 영입 등으로 수비가 좋아진 롯데 내야진이 내야 땅볼을 많이 아웃으로 처리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두 지표는 성격이 다소 상반된 면이 있다. 그래서 두 지표에서 모두 1위를 한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두 부분에서 고루 우수했던 선수는 있었다. RF가 가장 높았던 외야수 박해민은 실책을 단 1개 기록했고 수비율도 0.997로 높았다. 실책이 없었던 버나디나(2.35)와 전준우(2.31)도 각각 RF 4,5위를 기록했다. 김민성은 후보들 중 유일하게 RF가 3을 넘었을뿐 아니라 실책수도 가장 적었던 후보(허경민·5개)과 1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피어밴드는 실책이 없던 투수들 중 유일하게 RF가 2를 넘었다.(2.08) 수비율이 높은 1루수 오재일도 이대호와의 RF가 0.04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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