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활동 10년 맞아 삼성 앞 시위…‘반올림’과 연대 활동가들
“10년 동안 삼성으로부터 반도체 노동자들의 희귀병이 직업병임을 인정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 싸워왔지만 삼성은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삼성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해, 산업이 노동자를 아프게 하는 일을 막기 위해 계속 거리에서 싸우겠습니다.”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디지털시티 중앙문 앞. 삼성전자 본사가 보이는 길 앞에서 방진복을 입은 10여명이 현수막을 든 채 이같이 외쳤다. 이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활동가들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였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영정을 든 아버지 황상기씨(62)의 모습도 보였다.
반올림은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을 맞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년 11월20일 반올림의 전신인 ‘삼성반도체 백혈병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범했다. 이들은 황유미씨(당시 23세)가 그해 3월6일 숨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황씨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황씨는 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며 안전수칙에 대한 교육(설명)을 받지 못한 채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그는 일을 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황상기씨는 10년 전을 떠올리며 “2007년 11월20일도 오늘처럼 맑고 햇빛이 내리쬐는 날로 기억한다”며 “우리 유미의 죽음이 억울해 수소문 끝에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당시 황씨 가족은 삼성을 상대로 산재를 신청한 유일한 피해자였다. 공대위는 이후 백혈병을 포함한 다른 직업병 피해자, 삼성 외 다른 반도체·전자산업체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도록 2008년 2월 이름을 반올림으로 고쳤다. 노무사, 의사, 변호사들이 상임활동가로 참여했다. 반올림의 결성으로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반올림은 2008년 4월 삼성 백혈병 피해자 4명의 이름으로 첫 집단 산재 신청을 했고,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0년 1월 산재 불인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정 투쟁에 나섰다. 2011년 6월 황상기씨가 참여한 행정소송 1심 선고에서 백혈병 피해자 5명 중 황유미씨, 고 이숙영씨의 산재가 처음으로 인정됐다. 2013년 12월에는 반올림과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피해자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2014년 2월 반올림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2014년 5월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처음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반올림과 삼성은 협상에 들어갔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2014년 9월 일부 피해자 유가족들이 반올림과 의견차가 크다며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는 진통도 겪었다. 2014년 12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삼성과 반올림 사이에서 중재자로 나서 협상 조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2015년 7월23일 권고안 형태로 발표됐다.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직업병 피해자 보상을 위한 공익법인을 세우고,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보상 및 사과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반올림은 권고안을 받아들인 반면 삼성은 이를 거부한 후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렸다. 이에 반올림은 그해 10월7일부터 지금까지 삼성 서울 서초사옥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삼성은 “권고안에서 제시한 보상의 원칙과 기준을 거의 원안대로 수용해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2015년 9월 개설된 보상 창구에 160여명이 신청해 120여명이 보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올해 8월 다발성경화증, 지난 14일에는 뇌종양을 삼성전자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동안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질환에 걸린 이들은 계속 늘었다. 반올림은 삼성이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아 온 10년 동안 직업병을 호소한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자는 320명, 숨진 노동자는 118명이라고 주장했다.
반올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직업병 피해자들을 분노케 했던 것은 우리들의 아픔을 외면한 삼성의 냉정한 민낯이었다”며 “삼성은 과오에 대한 인정과 반성보다 어떻게든 문제를 축소시키고 모면하려는 꼼수만 보였다”고 주장했다.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42)는 “삼성은 아직까지 노동자들의 희귀질환에 대해 책임 있는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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