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씨(23)는 차량을 보는 눈썰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카센터에서 2년 정도 일한 경험 덕분이었다. 그는 외제차의 시동이 꺼지고 차량 문이 잠기면 ‘백미러’도 자동으로 접힌다는 사실도 알았다. 바꿔 말하면 백미러가 접히지 않은 채 세워진 차는 손잡이를 당겼을 때 문을 열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씨의 눈에 오모씨(35)의 벤츠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13일 새벽 3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아파트 후문. 서 있는 차의 백미러는 곧게 펴져 있었다. 이씨의 손은 자연스레 차량 손잡이를 향했다. 덜컥. 문을 열고 차량 주인인 마냥 운전석에 탑승했다. 그가 조수석에 놓여있던 가방을 들고 차를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딱 10초. 이씨는 자연스레 걸어 현장을 빠져나왔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것은 5만원권 2400장, 총 1억2000만원의 현금이라는 사실은 이씨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가방이 없어진 뒤 1시간만에 차 문이 열리고 가방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오씨. 황급히 도난 신고를 했다. 경찰은 “오씨가 운영하던 식당이 성업해 새로 분점을 내려고 했다”며 “가방에 담긴 돈은 새 점포 계약금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식당을 운영하던 오씨는 13일 새벽 2시쯤 자신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 차를 주차했다. 이후 집에 들어갔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차를 찾았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고 다시 집에 돌아가면서 그는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오씨의 차에 남은 이씨의 지문을 바탕으로 추적에 나섰다. 이씨는 이전에도 차량 안의 물건을 절도한 전과가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전 범행 때도 이씨가 경북 구미시로 도피했던 점을 착안해 이번에도 구미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씨의 중학교 동창 김모씨(23)의 행방과 김씨가 이씨와 만나는 현장을 확인해 둘을 검거했다.
범인은 잡혔지만 이씨가 훔친 돈은 4000만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고급 승용차와 명품 시계, 유흥비에 거액을 썼다고 했다. 친구 김씨의 명의로 경기 수원시에 오피스텔도 계약했다. 김씨는 훔친 돈 일부를 보관해주면서 이 중 1300만원을 이씨로부터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특정한 직업이나 거주지 없아 PC방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하고, 생활비가 필요할 때는 문이 열린 차량을 노려 차 안의 물건을 훔쳐 팔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범행 전날 오후 8시부터 사당동 PC방에 들어간 뒤 새벽 2시부터 PC방을 나와 범행을 저지른 장면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사당동에서 차량 문을 열어 노트북을 훔쳤으며, 도보로 이동해 또다른 차량의 문을 열었지만 차 안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하지 못해 빈 손으로 나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오씨의 차는 이씨가 그날 문을 연 세번째 차였다. 그러나 이씨는 범행 당시에는 가방 속에 거액의 현금이 들어가있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이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이씨의 도피를 도운 김씨는 범인도피, 장물 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은 이씨가 훔친 돈으로 산 승용차와 명품시계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매 등의 절차를 거쳐 오씨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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