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김상수. 이석우 기자

 

2020년 1월1일. 키움 투수 김상수(32)는 책상에 앉아 새 공책을 펼쳐놓았다. 공책 맨 앞에 한 해동안 이룰 목표 열가지를 적는 게 새해맞이 연례행사다. 팀 우승, 도쿄 올림픽 출전, 부상 없이 60경기 등판, 41홀드, 팬들과의 소통, 주장 역할 잘하기… 개인적인 것들까지 9개를 적고는 가장 밑에 ‘위 9가지를 모두 지키는 것’으로 목표 10개를 채웠다.

지난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개인 훈련 도중 만난 김상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무에서 복무하던 때(2014~2015년)부터 매년 해오던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비록 팀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쳐 큰 목표였던 ‘팀 우승’을 이루진 못했지만, 공책에 적었던 ‘40홀드’와 ‘60경기 출전’을 모두 현실로 만들어냈다. 40홀드는 김상수가 KBO리그에서 처음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이기도 하다.

첫 장 뒤부터는 늘 그랬듯, 김상수가 그날 한 운동 및 일과, 몸무게, 시즌 중 타자들을 상대한 기록 등이 적히게 된다. 타자별로 구사한 결정구, 그날의 구속, 연초에 잡았던 목표를 귀퉁이에 다시 적어놓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년이 되면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 공책 하나가 가득 찼고, 그게 여러권 쌓이면서 그만의 역사가 됐다. 김상수는 “시즌을 치르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과거 컨디션 좋았을 때 어떤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찾아보며 좋았을 때의 감각을 찾는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공책과 함께 만든 좋은 습관은 김상수가 마운드 기대주에서 팀의 주축 불펜 투수로 거듭난 계기가 됐다. 김상수는 “지난해 40홀드가 다른 투수들의 도움을 받은, 운이 좋은 기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내게는 최근 수년간 많은 경기를 꾸준히 등판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5~2019년 5시즌 동안 김상수는 KBO리그 투수들 중 세번째로 많은 254경기에 등판했다. 기복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성실함까지 높이 평가받아 김상수는 2년 연속 키움의 주장으로 낙점받았다.

김상수의 노트. 선수 본인 제공

 

새해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한 김상수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큰 변화 중 하나는 공책 첫 장에 적은 ‘팬들과의 소통’을 실천하고자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었다. 김상수는 “원래 소셜미디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선수들의 사생활도 드러나고, 잘못 올린 말 한마디가 문제로 번지는 상황도 많았다”면서도 “팬들이나 팀 내 선수들이 소셜미디어를 중요한 소통의 장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장을 맡으면서도 경기 후 선수단을 불러모아 ‘즉석 사인회’를 열기도 했던 김상수는 이번엔 따로 식사 자리를 함께한 박병호 등 팀 동료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오프시즌 선수들 근황에 목마른 팬들의 갈증을 채우고 있다. “이왕 시작한 거 잘해야 한다”며 “팬들이 원하는 선수들 사진이 있으면 같이 찍어서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나은 투수가 되기 위해서 투구폼 변화도 감행하기로 했다. 김상수는 공을 던지기 전 등을 타자쪽에 보일 정도로 뒤트는 폼으로 구속이 오르는 효과를 봤는데, 몸에 다소 무리가 갔다. 김상수는 “사실 지난 시즌 초반 한 달 정도 옆구리가 아팠다. 핑계처럼 들릴 것 같아 테이핑을 하고 마운드에 올랐다”며 “손혁 감독님도 취임 후 면담 때 ‘앞으로 5년은 더 던져야할텐데, 폼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몸을 전보다 덜 트는, ‘정석’에 가까운 폼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새해 캐치볼을 시작한 김상수는 한창 거울 앞에서 새 투구폼으로 섀도 피칭을 하며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여러 변화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건, 원대하게 잡은 목표를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그의 자세다. ‘완벽하게 연습해야 비로소 완벽해진다’는, 공책에 적은 그의 말에서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올 시즌을 잘 치르면 FA 자격까지 쥐게 되지만, 김상수는 “올해도 다가올 결과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캠프에서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을 잘 해내는 데만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면 지난해 홀드 신기록을 세웠던 것처럼 꿈같은 목표들이 눈 앞에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경험했고 또 믿기 때문이다.

고척|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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