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수년간 폭행을 당했다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심석희(22)의 폭로에 이어 전직 유도선수도 현역 시절 지도자에게 당했던 폭행 및 성폭행에 대해 실명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부문의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운동이 그랬듯 심석희의 용기가 또다른 피해자의 폭로를 이끌어냈지만,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대한유도회의 대응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씨(24)는 14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선고에서 선수로 재학하던 2011년부터 당시 코치였던 손모씨로부터 약 20여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이 기간 손씨가 자신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하고, 지난해 초에는 손씨가 신씨에게 ‘성관계 사실을 부인하라’ ‘고소를 취하하라’며 수십·수백만원을 주려고 했다고도 전했다.
신씨는 결국 지난해 3월 손씨의 폭행 및 성폭행에 대해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신씨는 “경찰에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해달라고 부탁했던 지도자는 유도계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증언을 거부했고 동료는 연락이 끊겼다”며 조사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사건이 검찰에 넘어갔고 신씨도 페이스북에 다른 사람이 겪은 일인 것처럼 관련 사실을 설명했지만, 이후에도 조사가 더디자 신씨는 “현역 선수임에도 용기를 내준 심석희 선수에게 감사하다”며 자신도 실명을 들어 언론에 직접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신씨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역 선수들은 아무래도 피해 사실을 알리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손씨는 한겨레신문을 통해 “(신씨와는) 연인 관계였으며 성폭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자 유도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주장이 상이해 수사결과에 따라 징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결과는 별개로 학생을 선도할 지도자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해당자에 대한 영구제명 및 삭단(유도 단급 삭제) 조치를 오는 19일 예정된 이사회에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도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신씨가 소셜 미디어에 해당 사건 관련 내용을 올렸을 때야 사건을 인지했다”며 “신씨가 유도회에 손씨에 대한 신고를 하지 않은데다 현재 등록 선수가 아니라 사건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고, 신씨와 손씨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아 손씨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도회의 대응이 안일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재범 폭행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1월부터 선수들의 폭행에 대한 경각심이 체육계에 높아졌으나 유도회는 가해자로 지목된 손씨가 ‘지난해 초부터 유도계에서 활동하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도계에 오랫동안 몸 담았고 가족 중에도 유도계 인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손씨 측의 입장을 유도회가 듣기 어려웠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유도회가 사건이 크게 불거진 뒤에야 이를 무마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유도뿐 아니라 다른 체육 종목 단체들도 이같은 대응을 반복한다면 피해자들은 실명을 내고 2차 피해를 감수하고서야 자신의 피해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계속 놓일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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