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호(20·KT)가 지난해 프로야구 고졸 신인으로 선보였던 활약은 ‘신인왕’이라는 단어도 작아보일만큼 화려했다.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을 24년 만에 갈아치우고 30홈런에도 1개 차까지 다가서며 프로야구판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해 말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만난 강백호는 지난 한 해 프로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인연들을 되짚어보며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시즌 전 가장 주목받은 신인이 시즌 후 가장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신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건, 선수로서 부침읕 겪을 때마다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던 건 적잖은 이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큰 형’이자 ‘야구 선배’ 고영표
강백호는 지난해 12월 베트남으로 3박4일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귀국 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여행사진에는 팀 동료 고영표도 함께 찍혔다. 지난해 스프링캠프의 룸메이트로 맺은 인연이 시즌 개막 후에도 이어졌다. 둘이 수원 홈구장 근처에서 이웃사촌으로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백호는 “부모님도 (고)영표 형을 친자식처럼 좋아하고, 영표형도 서슴없이 우리 가족들에게 다가와줬다”고 말했다. 강백호를 외동아들로 둔 부모님에게 고영표는 이미 큰아들 같은 존재가 됐다고도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도중에 고영표로부터 전화가 왔을만큼 둘은 각별한 존재가 됐다.
고영표는 KT 팀내에서, 프로야구계에서도 각종 기록에 관심이 많은 선수로도 유명하다. 승·패 및 평균자책점 등 야구에 처음 빠진 팬들이 접하게 되는 기초적인 기록뿐 아니라 자신의 탈삼진율, 장타 허용률 등 세부적인 기록도 직접 찾아본다. 야구 능력만큼이나 야구에 대한 애정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백호에게 OPS(출루율+장타율),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의 존재를 가르친 것도 고영표였다.
강백호는 “영표형이 야구를 무척 좋아한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자신도 만만치 않게 야구에 빠져 산다. 직업이 된 야구가 의무감처럼 다가올 법도 한데, 매일 야구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고영표와 야구이야기를 하는 때가 많았다고 했다. 강백호는 “올해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할때 영표형과 한 얘기가 도움이 됐다”며 “덕분에 슬럼프도 짧아졌다. 올해 영표 형에게 꽤 많이 의지했다”고 말했다. 고영표는 올해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며 잠시 강백호와 경기장에서는 떨어지지만, 강백호는 “길어야 2년이지 않냐”며 아쉬움을 잊으려 했다.
■‘존경했던 스윙’ 최주환 선배
한 시즌에 팀간 맞대결이 16경기나 되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면 다른 팀 선후배들과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강백호에게 프로무대는 TV로만 봐온 선배들을 직접 마주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KT 이외에 다른 팀 선수 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꼽으라고 하니 강백호는 두산의 최주환을 댔다.
둘은 고졸 우투좌타라는 점 외에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출신학교와 출신지 뿐만 아니라 포지션도 다르다. 강백호는 고교 때 투수와 포수를, 프로에서 외야수를 봤지만 최주환의 주포지션은 내야수와 지명타자다. 데뷔 첫 해부터 29홈런을 치며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강백호와 달리 최주환은 프로 13년차였던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26홈런)한 ‘대기만성’형 선수다. 그러나 강백호는 고교 때부터 “최주환 선배의 스윙이 전부터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른 프로 선배들보다 좀 더 존경하는 선수였고 시즌 중에도 선배가 나오는 영상을 많이 봐왔다”고 말했다.
둘은 지난해 7월 올스타전 때 친분을 쌓았다. 팬들은 강백호가 마운드에 올라 던진 시속 150㎞가 넘는 빠른 공을 기억하지만, 강백호는 최주환과 전화번호를 주고 받으며 맺은 인연을 기억했다. 강백호는 “최주환 선배가 먼저 다가와서 프로 선수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다”며 “직접 보고 인연을 맺은 후에도 시즌 도중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강백호 못지 않게 진지한 최주환도 강백호의 또다른 멘토가 됐다.
코칭스태프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스프링캠프부터 시즌 준비를 도운 채종범 전 KT 타격코치(현 NC 타격코치), 시즌 도중 1군 타격코치로 합류했던 이숭용 현 KT 단장은 강백호가 가장 먼저 꺼낸 조력자들이다. 강백호는 “지금은 NC로 가셨지만 채 코치님이 저와 많이 대화하며 시즌 준비를 많이 해 1군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단장님은 (코치 때) 막내인 저를 잘 챙겨주시고, 좋지 않을 때도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고 감사를 표했다.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강성우 배터리코치 이름도 꺼냈다. “인터뷰할 때마다 강 코치님 얘기를 못 꺼냈는데, 같은 강씨라고 시즌 내내 아버지처럼 잘 챙겨주셨어요.”
강백호에게 프로에서 두번째 맞는 2019시즌 준비 계획을 물으니 “특별한 목표를 정해두지 않고, 직접 몸으로 도전하며 부딪쳐보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인 때부터 개인적 목표를 묻는 수많은 질문에 뚜렷한 수치를 답변으로 내놓지 않던 강백호는 올해도 지난해처럼 준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직접 변화를 시도하고, 막히면 또다른 변화를 통해 발전하는 그만의 방식을 새해에도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오프시즌 준비는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지풍 트레이닝코치가 짜준 식단에 맞춰 생활했다. 점심에는 닭가슴살, 계란, 베이컨을 주로 먹고 저녁에는 상추에 쌀밥 없이 고기만 싸먹는 ‘탄수화물 제로’ 식단이었다. 강백호는 “지난 시즌 전에는 ‘먹고픈대로 먹고 밥만 좀 줄이라’는 주문만 받았는데 이번에는 밥을 아예 먹지 않았다”며 “평소 밥 없이는 식사를 잘 못하긴 했는데, 탄수화물 먹지 못하는 게 생각보다도 더 힘들더라”며 멋적은 듯 웃었다.
12월 한 달간은 여러차례 여행을 다녀오는 등 휴식에 주력하며 식사도 보다 자유롭게 했다. 야구공은 잠시 손에서 놓았지만 머릿속에 다음 시즌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백호는 “타격에서 크게 변화를 주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프로 첫 시즌 지명타자와 좌익수를 오간 강백호는 올해 우익수 포지션에 새로 도전한다. 마운드에서 강속구를 뿌릴 정도로 강한 어깨를 십분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강백호는 “그래도 올해는 처음 외야 수비를 배울 때보다는 쉽게 적응하지 않을까 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프로 첫 해 풀타임으로 1군에 머무르면서도 이루지 못한 ‘가을야구’에 대한 각오도 함께 전했다. 강백호는 “우리 KT가 전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좀 더 착실히 준비하고 팀도 운이 따른다면 우리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 선수들이 부러웠다. 저도 그 무대에 서서 큰 무대가 주는 희열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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