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한 걸음 나아갑니다.”
지난해 12월2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일부다. 오후 11시쯤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만 65세를 넘은 장애인들이 노인장기요양 수급자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받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대신 그만큼 활동지원을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21대 국회에 입성한 장 의원의 1호 대표발의 법안이었다.
21대 ‘한 걸음’, 어떻게 내디뎠나
큰 공감대 밀고 작은 이견엔 양보
장혜영 의원 ‘한 걸음’ 전략으로
장애인활동지원법 본회의 통과
예상 밖의 성과였다. 직전까지 장애인들은 만 65세가 되는 순간부터 활동지원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한 달 480시간에 달하던 활동지원서비스가 하루 최대 4시간으로 확 줄었다.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장애인, 발달 지체장애인 등에겐 치명적이었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비판도 나왔다.
상황 변화는 요원했다. 20대 국회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수차례 다뤘지만 성과는 없었다. 예산 문제가 컸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 수급자가 65세 이후에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경우 2021년 기준 약 600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 직후인 지난해 10월 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김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다. 장혜영 의원실 조현수 비서관이 말했다. “그쪽에서 내놓는 법안이라면 사실상 정부안이거든요.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11월24일 열린 복지위 제2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복지부도 ‘65세 사각지대’를 인식하고 있었다. 정충현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현행 장애인활동지원법상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기준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이 조항을 바꾸지 않고서는 65세 이후의 급여 감소자에게 활동지원을 할 수가 없다”고 법 개정 필요성을 말했다.
의원들만 의견일치를 볼 수 있다면 법안 통과도 가능했다. ‘65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법안을 제출한 의원은 총 6명.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65세 조항뿐 아니라 활동지원과 관련된 다른 부분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최혜영 민주당 의원은 장애인들이 만 65세가 되기 전과 똑같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받든, 노인장기요양보험상 서비스를 받든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조현수 비서관은 “근본적 대안이긴 한데, 자칫 법안이 계류될 위험이 있었다”며 “일단 법이 통과돼야 당장 피해입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우리 입장이었다. 나머지는 후속과제로 미루더라도”라고 말했다. 두 걸음 뛰려다 자칫 제자리걸음하기보다는 당장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게 우선이라는 취지다.
법안이 통과되던 날, ‘근본적 대책’을 주문하며 각을 세웠던 의원들 중 반대나 기권 의견을 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부대의견이 더해졌다. “부대의견으로, 장기적 관점에서는 급여량 감소 문제 해소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아 보건복지부가 2021년까지 대안을 도출하여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성공 법안의 공식 = ‘한 걸음’ 위한 긴 준비
통과 가능성 낮은 쟁점법안은
물밑협상 등 지난한 ‘설득 작업’
쟁점법안을 다루는 건 의원 개인에게 ‘비합리적’ 선택이다. 비쟁점법안 대비 법안 통과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의원실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럼에도 일부 의원·보좌진은 관행에 맞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17대 국회부터 보좌진으로 일한 박선민 보좌관(현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의 말이다. “보면 알아요. ‘이 법은 통과되겠다’ ‘안 되겠다’. 그런데 많이 통과시킨다고 그게 꼭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4년 동안 단 한 건만 통과시키더라도, 큰 갈등을 다룬다면 의미가 있는 거죠.”
쟁점법안 통과를 위한 노력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먼저 시민단체를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에 나선다. 여야 간 갈등이 예상되는 쟁점이 있을 땐 법안 발의 전부터 사전 조정했다. 발의 과정에선 시민단체 및 부처 관계자를 불러 여야 합동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내용을 가다듬었다. 여야 보좌진이 모이는 등 공동 논의 과정을 밟았다. 발의 의원이 직접 관심을 갖고 전화를 돌리고 다른 당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박 보좌관은 2011년 통과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지원법)을 의미 있는 법안으로 꼽았다. “뜻밖에도 처음 노숙인지원법을 반대한 건 노숙인 당사자들이었어요.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노숙인을 지원하느냐’는 시선을 받을까봐 두려워했죠.” 박 보좌관은 당사자인 노숙인과 관련 단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홈리스 1000명 서명운동’을 벌이며 노숙인의 의견을 수렴했다. 당사자를 설득하는 작업은 그들의 조직된 의사를 입법 과정에 들여오는 일이기도 했다. 노숙인 등 총 1531명의 뜻을 모아 그해 2월 국회에 청원을 냈다.
16대 국회 때부터 일한 김명신 보좌관(현 김상희 민주당 의원실)은 2007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말했다. “장애인 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던 장향숙 의원(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당은 ‘장애 당사자가 국회의원이 됐으면 된 것 아니냐’는 입장이고, 장애인단체는 장애인이 겪는 문제를 진보를 표방한 정당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지금이야 롯데마트가 안내견 입장을 반대했다가 여론의 눈총을 받는 상황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다. 각당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의문을 표했다. 장 의원은 당시 김한길 원내대표와 농성 중이던 장애단체 사람들 간 만남을 주선했다.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이뤄지기 전 여야 보좌진이 먼저 모여 논의를 했다. 장애인단체 사람들과 간담회도 열었다. 법안소위에서 의원들이 법안을 볼 때쯤엔 까다로운 쟁점 몇가지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내용이 합의됐다.
20대 국회에서 활동한 채이배 전 의원은 2017년 개정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거론했다. 개정 외감법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상장기업에 대해 6년간 외부감사를 자유수임한 뒤 3년 동안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임하도록 규정했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지정한 이전까지의 자유수임보다 까다로운 방식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외부감사를 더 세게 받게 됐으니 재계,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죠. 그런 의견을 듣고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법안에 반대했는데, 제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했어요. 법안소위 들어오는 분들은 다 찾아갔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세 번 찾아가기도 하고…. 회계란 뭔지, 분식회계가 왜 문제인지 아주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했죠.”
물밑 협상, 타협, 조정 등 노력의 열매는 작지 않다. 김 보좌관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성과를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이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고, 이 법을 근거로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어요. 법 활용이 늘어나고 언론에 보도되니 국민들도 ‘이런 것도 차별이구나’ 인식하게 됐죠. 그때 법이 없었다면 지금 ‘롯데마트 안내견’ 사건도 없었을 겁니다.”
국민의힘 의원실 홍지웅 보좌관도 말했다. “중요한 법안은 의무를 부과하고 규제를 만들고 삶을 변화시킵니다. 기업 등 어떤 집단은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봅니다.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 법안을 내고, 갈등을 잘 조율하는 의원이 더 잘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조문희·윤승민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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