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는 ‘불통’이라는 수식어가 끊이지 않았다. 국회나 정부 등 현존하는 대의민주주의 기구에 대한 불신도 오래됐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앞세우며 시민이 직접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과 ‘신고리 5·6호기’ ‘대입제도 개편’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공론화위원회는 그렇게 등장했다.

시민이 직접 행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시민참여단이 공론조사로 정한 권고안이 정책에 반영됐다.

두 제도는 그간 기술적 한계 때문에 현실화하기 어려웠던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을 대안이라는 기대도 받았다.

그 기대는 문 대통령 집권 5년차에도 유효할까. 두 제도의 명과 암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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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입제도’ ‘신고리 원전’에 적용
숙의민주주의 기반, 책임 소재는 갸웃
의제·자료 불명확에 공론조사 ‘삐걱’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와 2018년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를 공론화위원회가 실시하는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했다. 시민들 의견이 정책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공론조사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은 신선했다. 하지만 공론조사의 설계 및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도 노출했다. 특히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은 의제와 자료가 명료하지 않았다는 점, 그로 인해 구체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할 일을 시민에게 미루는 식으로 악용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내용 어렵고 시간 부족했던 대입제도 공론조사

공론조사는 시민들을 무작위로 선발한 뒤 주제에 맞는 자료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고민한 뒤 각자 의견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숙의’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와는 차이가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위 권고에 따라 공사가 재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사 백지화’와는 다른 결론이었다. 공론화위가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라고 권고하자, 정부는 이를 구체화해 신규 원전 건설계획 및 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입제도 공론화위도 2022학년도 대입 때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고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등의 권고안을 냈고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단기적으로는 수능 비중을 확대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수능 절대평가를 준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역시 문 대통령의 공약인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에서는 한 걸음 물러선 결과다.

두 공론화위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의 권고는 한국 사회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대선 공약이라고 무조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밀어붙였으면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정보와 자료들이 투명하게 공개돼 모두가 접근할 수 있었기에 수용성도 높았다”고 말했다. 반면 대입제도의 경우 공론화위 권고에도 비판이 적잖았다. 대입 문제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탓도 있지만 공론조사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여럿 발견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론조사가 가능한 영역에 대한 공통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의제의 쟁점이 명확해야 하고,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가 시민들에게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입제도 공론조사 과정에서는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의제의 경우, 공론화위가 처음 ‘학생부 위주 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의 비중’ ‘수능 최저학력 기준 활용 여부’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 등 3가지를 논의한다고 밝혔으나, 실제 시민참여단이 논의한 안은 3가지를 조합한 4개 시나리오였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2018년 대입제도 공론화 평가 토론회에서 “교육 전문가들조차 각 시나리오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시민참여단에 주어진 400쪽 분량의 자료집은 언론기사나 논문을 엮어놓은 것이었으며, 이를 숙의할 시간이 16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숙의 후 조사에서 4가지 시나리오 중 2가지에 대한 지지도 차이가 4.4%포인트(52.5%-48.1%)에 머물자, 한 가지 시나리오를 대입제도 개편안으로 내지 못한 공론화위는 중장기 대입정책에 대한 부가적인 조사 결과를 권고안에 포함시켰다. ‘단기에 수능 확대-중장기적으로 수능 절대평가화’라는 결론은 주된 논의가 아닌 부가조사에서 도출됐으며, 발표 후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에도 ‘시민의 참여기회를 제공했고 숙의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측정한 수용도(‘나와 의견이 달라도 존중하겠다’는 응답률) 또한 93.0%로 높았다. 그러나 단국대 김학린·전형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은 “공론화 참여자들이 숙의를 통해 사안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립적인 주장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해졌다”며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고 양극화된 채 마무리됐는데도 이를 성공적인 공론화로 간주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고리 공론조사도 한계…바람직한 공론조사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비슷한 한계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탈원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탈원전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것처럼 비쳤지만 사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에 대한 여론이 다수였다”며 “공론화 수용도가 높았던 것은 다수의견을 채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다른 공론화 때 소수의견이 채택돼도 수용도가 높고, 갈등해결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이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공론화위 결정을 그대로 정책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전문성을 갖고 논의해야 할 주제에 공론화가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지만 정책 정당화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결정을 시민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정치 지도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론조사가 정교하게 설계되면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은 유효하다. 박태순 소장은 “난민 문제·낙태죄 유지 여부 등 시대가 바뀌어 새로 제기된 문제들, 선거제도·공무원 호봉제 등 국민을 대의하는 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들, 국민의 생존과 재산에 영향을 끼치지만 국민투표까지 부칠 정도가 아닌 군가산점 도입 같은 사안들은 충분히 공론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소규모로 운영된 공론화위는 성공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실제 대구 신청사 건립 부지 선정, 부산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도입이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되는 등 지자체 차원의 공론화위는 활발해지고 있다.

 

윤승민·김지원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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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승민